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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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승리와 영광의 역사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역사학계에서도 가장 많이 연구되었으며, 드라마로도 가장 많이 제작된 소재가 임진왜란이 아닐까 한다. 임진왜란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그 자체로 문학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조선의 무방비한 방어 태세와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진격()-백성을 버린 무능한 군주와 압도적인 적의 위력()-이순신으로 대표되는 영웅의 활약과 의병에 참여한 민초들의 투쟁()-왜군의 격퇴와 노량 해전의 저녁노을 속 이순신의 마지막 숨결()까지. 임진왜란은 조선 국가 존립의 위기지만 영웅들과 민초의 노력에 의한 국가 재생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임진왜란의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속 깊은 애국심과 어려운 상황에 대한 극복 의지를 다잡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가진 교훈성이자 역사를 공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승리와 영광의 역사를 좋아한다는 말의 이면에는 패배와 좌절의 역사를 기피한다는 말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승리와 영광의 역사를 읽으며 자부심과 희망을 느끼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삶이 오늘날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의 영광은 나의 영광이고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은 곧 오늘날 우리 사회의 영광이다. 그것은 곧 그들의 굴욕과 비극은 오늘날 나의 비극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국가와 공동체의 역사에서도 오로지 승리와 영광만으로 이루어진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의 역사 속 실패의 원인을 냉정히 규명하고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하나의 이정표로서 역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슬픔과 좌절의 역사를 망각하려 한다. 그것을 직시하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임진왜란의 극적 스토리가 끝나고 불과 50년 후 조선은 또 다른 국가의 존립 위기를 겪는다. 북쪽에서 힘을 키운 여진족은 후금을 건국하고 명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의 파괴와 변혁을 가져왔다. 이 변화의 파도는 조선에도 몰아쳤으며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두 번의 외침을 겪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다 알다시피 조선은 결국 청나라에게 항복을 한다. 청 태종이 앉은 높디 높은 삼전도의 단 앞에 나당전쟁에서 승리한 신라의 이야기,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강감찬의 승전가, 역사적인 명량해전의 보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병자호란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인조 1636은 그러한 비극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저자는 서울성곽에 관심을 가지고 남한산성을 답사하는 중 그 역사성에 주목하여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독자들이 역사에 대한 심오한 지식 없이도 병자호란의 배경과 전개 과정, 결과와 의의를 이해할수 있도록 도와준다. 차근차근 그리고 쉽게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여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설명하는 가이드와 같은 책이다.

저자는 책의 제목에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인조를 담았으며 부제로 혼군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저자는 조선의 임금 인조를 중심으로 병자호란을 서술하였다. 그렇기에 이 책도 인조를 중심으로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병자호란 전 인조에서는 광해군 대의 정치 상황과 인조반정의 발생을 서술하며 병자호란 전의 배경으로 조선이 북방 방비에 주력할 수 없었던 이유인 이괄의 난, 조선을 둘러싼 국제적 환경의 변화와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의 등장 등 병자호란의 원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병자호란 중 인조는 청의 침입과 인조의 도피, 남한산성에서의 항전과 천해요새 강화도의 함락 등 병자호란의 전개 과정에 주목하여 역사적 사실들을 사료와 함께 서술해 나가고 있다. 3병자호란 후 인조는 병자호란 시기에 활동한 인물인 김자점과 임경업 등에 대한 저자의 평가, 청으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생활과 처지, 소현세자의 귀국과 죽음, 피로인들의 이야기 등 병자호란의 결과와 그 수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저자 스스로가 표방하고 있듯 역사평설이다. 전문 역사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상력을 버무린 역사소설도 아니다. 그렇기에 굉장히 쉽게 쓰여 졌지만 동시에 풍부한 내용과 역사적 인물들에 관한 저자 나름의 논리적인 평을 담고 있다.

특히나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병자호란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삶과 활동, 생각 등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동시에 적극적인 저자의 평을 담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곱씹어 보면서 독자들이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 평가를 내리기 바라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병자호란 시기 다양한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 또한 이 책을 읽어나가는 하나의 재미이다.

광해군은 폐위당할 만한 인물이었는가? 이괄은 권력에 눈이 멀어 난을 일으킨 인물이었는가? 임경업은 정말 병자호란 시기 명장으로 평가받을 만한 인물이었는가? 김경징은 왜 강화도를 사수하지 못하였는가? 역관 정명수는 왜 조선인이면서 조선을 못살게 굴었는가? 청나라에서 소현세자는 어떠한 심정을 느꼈으며 귀국 후 왜 인조는 그를 멀리했을까? 남편을 잃고 자식들마저 유배된 왕가의 여인 강빈은 어떻게 죽어갔는가?

그리고 그 모든 질문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인조가 서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조가 권력 욕심에 찌든 인물이라거나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라던가, 주색에 빠져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책은 오히려 분노와 경멸의 눈으로 악마화된 조선의 혼군 인조를 인간화(人間化)하게 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물을 수 밖에 없다. 국가에 위기가 발생했고, 그 위기로 인해 국가는 큰 혼란에 빠졌으며 거의 멸망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때에 군주는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책임을 졌는가? 이러한 시대의 물음이 바로 흔히들 말하는 역사의 평가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인조는 이러한 역사의 평가에서 거의 낙제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 것이다. 오히려 병자호란과 인조는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대한 물음을 던진다. 국가는 무엇인가?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공동체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조선 비극의 한가운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기록 속 한가운데,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비극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인조 1636을 통해 굴욕의 그 날 남한산성에서 나오는 인조의 발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역사의 의미와 나의 삶, 오늘날 우리 공동체에 대한 수 많은 질문과 답을 찾아 나갈 수 있다. 오늘날 나와 같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며 더 나은 공동체, 바람직한 사회를 꿈꾸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이름 모를 수많은 시대의 동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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