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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탑의 살인
김영민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5년 3월
평점 :
본격추리소설추천 김영민작가의 수상탑의 살인 서평 아프로스미디어 출간

김영민 작가님의 수상탑의 살인을 읽었습니다.
앤솔러지 위주의 단편소설로만 접해오던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라 큰 기대감을 안고 읽게 되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말 오랜만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뒤통수가 띵한 제대로 된 본격추리소설이었습니다.
저는 추리소설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을 제일 좋아하는데 정말 간만의 제대로 된 본격추리소설이라 국내에서도 이 정도의 트릭이 끝내주는 작품이 나올 수 있구나 싶을 정도였거든요.
본격미스터리소설의 시그니쳐와도 같은 자세한 도면도에 등장인물 리스트까지, 나 본격 추리 소설이야!라고 외치는 듯한 소설 수상탑의 살인은 지구 온난화로 인류에게 미래가 없을 수도 있는 어쩌면 디스토피아인 세계관에서 제3세계의 소녀 똣니가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사망하며 시작됩니다. 사실 똣니의 등장부터 이 소설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요. 무려 이 소녀, 폭우로 허술하게 지어진 학교가 무너지려는 상황에서 다른 반 친구들이 가족을 걱정하는 와중에 선생님께 추가 질문을 던져 결국 본인만 무너지는 교실에서 살아남게 됩니다.
"내가...... 내가 괜히 질문을 하는 바람에 모두가 죽어버렸어......"
똣니가 울먹거리며 중얼거렸다. p12
그리고 이 소녀 역시 홀로 살아남아 산을 내려가다 산사태에 휩쓸려 사망하게 되며 본격적인 소설이 시작됩니다.
수상탑의 살인의 배경은 바다 한 가운데 위치한 기이한 건축물 수상탑입니다. 표지의 일러스트 그대로 막대한 부력으로 기반이 되는 대지와 5층 높이의 수상탑을 띄운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들법한 기괴한 건축물인데요. 유리탑의 살인이나 십각관처럼 본격 미스터리에는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무대로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이 하나하나 건축물에 대한 설정을 부여하고 그 건축물을 이용해 적합한 트릭을 설계한 뒤 디테일하게 제공되는 설계도와 글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범인을 맞추는 대결을 하는 재미야 말로 본격미스터리를 보는 진짜 이유니까요.
바다에 떠있는 5층까지 탑이라는 소설의 배경은 그간 읽어왔던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독특하고 몰입력있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있어도 밀실인데 전파가 차단되어 휴대폰이 작동하지 않으며 유일한 이동수단인 보트마저 폭파되며 수상탑은 말 그대로 밀실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살인이 연달아 발생하며 의심을 싫어하는 대학원생 탐정 한규현의 시점으로 본격적인 추리가 진행됩니다.
대학원생이 교수와 같은 공간을 쓴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아 보여서요. 대학원생에게는 이만한 고문이 또 없습니다. p55
"학생, 됐으니까 범인이 누군지부터 말하면 안 되겠어요?" p254
특히 소설은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무거운 주제의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자리잡은 블랙유머 덕분에 지루할 새 없이 페이지를 넘겨갈 수 있었는데요. 특히 대학원생을 소재로 한 대화는 저도 무척 공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을 보면 꼭 있는 추리쇼에 태클을 거는 부분도 무척 재미있었구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앞서 말한 유머러스한 대화도, 1인칭 시점으로 탐정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매력적인 전개도, 추리소설의 근본 그 자체와도 같은 알리바이를 점검하며 용의자를 하나씩 제외시켜가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상탑의 살인에서 사용되었던 '트릭' 그 자체였는데요.
결국 추리소설을 읽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거대한 트릭의 반전만이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은데 그 트릭이 특히나 놀라운 경우에는 마치 작가님이 그 트릭을 먼저 떠올리고 트릭에 어울리는 배경과 등장인물 그리고 이야기를 창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시라이도모유키의 엘리펀트 헤드의 트릭이 이런 생각을 들게 했는데 오늘 읽은 수상탑의 살인 역시 그에 못지않는 충격적인 트릭으로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수상탑과 계속해서 언급되던 지구 온난화까지 어느 하나 맥거핀으로 소모되지 않고 모두 꼼꼼하게 활용한 영리하면서도 놀라운 소설이었던 수상탑의 살인.
국내에도 이렇게 제대로 된 '트릭'이 메인이 되는 본격미스터리 소설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해당 장르의 팬으로서 너무 행복하며 왠지 마음에 들지 않던 표지조차 소설을 모두 읽은 후에 보니 이 또한 복선처럼 느껴져 재차 감탄하게 만든 국적을 불문하고 제대로 된 본격 추리소설 수상탑의 살인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