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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 부부 ㅣ 새소설 20
권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5월
평점 :

묘하게 읽는 내내 작중 두 주인공들이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안타깝고 불쌍하면서 행복하길 응원하게 되는 소설 테트리스 부부를 읽었다.
소설 테트리스 부부 속 주인공 강지웅과 한민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평범한 부부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따져보자면 평범보다는 하위 30%에 가까운 조금은 열등감에 치여, 혹은 허영심에 빠져 사는 한심하지만 그런만큼 누구나 자신을 투영시켜 볼 수 있는 그런 보통의 사람들이다.
이 부부는 큰 확신 없이 막연한 두려움으로 딩크를 선택했고, 또 딩크로 인해 다가오게 될 미래를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있다. 아파트를 동경하며 좁은 10평 오피스텔에 살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면서 또 다른 한켠으로는 아파트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있다.
부부는 경제관념이 비슷해야 크게 다투지 않고 산다는데 이 부부는 그 개념이 완전히 정반대다. 남편은 투자보다는 저축을 하며 아끼며 미래를 준비하지만 아내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스스로를 위해 마통을 뚫어 시원하게 미래를 팔아 오늘을 내달리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인지 무엇인지 모를 걱정과 함께 요즘 핫하다는 일은 모두 도전한다. 유투브부터 코인, 주식 같은 투자까지.
물론 결과가 시원찮다.
소설 테트리스부부는 두 부부가 명절을 맞아 손주를 기다리는 부모님들에게 딩크라는 소식을 전달하는 딥-다크한 분위기로 시작된다.
어느 때 보다 힘든 명절이 될 것이 자명했다.
마음에 없는 소리와 미처 숨기지 못한 마음의 소리가 어지럽게 오갈텐데.
13p
처음엔 고양이처럼 굴다가 종국엔 사자처럼 울부지었다. 31p
소설은 공감을 통해, 그리고 반면교사를 통해 위로와 힐링을 이끌어내듯 문장이 섬세하고 무엇보다 쉽게 몰입된다.
소설은 크게 세 파트로 이루어지는데 앞선 두 파트는 각각 아내와 남편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첫번째 챕터를 강지웅의 시점에서 보고 있으면 자기가 잘못해놓고 되려 화내는 한민서의 모습에 내가 강지웅에 빙의라도 된 듯 속이 타오른다. 이렇게 쉽게 공감과 분노를 이끌어내는 것이 작가의 필력이겠지 하며 시원한 냉수를 마시며 소설을 계속해서 읽다보면 분노는 더욱 커져간다.
남편 입장에서 보는 아내는 그야말로 인간쓰레기 그 자체다. 무례한 행동을 밥먹듯이 하며 그로인해 화를 내면 남자의 쪼잔함으로 모는 비열함까지. 심지어 남편의 동의 없이 가면을 쓰고 룩북 유투버로도 활동하기까지 하는 모습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경악 그 자체다.
놀랍게도 한민서의 시선에서 강지웅을 바라보는 2부가 시작되면 이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강지웅의 못난 모습들이 보여지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한민서의 시점에서 보는 한민서는 여전히 내로남불에 구제불능이다.
병원의 진단 이후 완전히 달라진 지웅의 모습에 제대로 거울치료 당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민서의 모습은 속이 뻥 뚤리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렇지만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면 여전히 안타깝고 씁쓸하다. 지웅의 행동이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젠 남편과 아내 모두 망가져버린 것 같아 더 공허하게 다가온다.
이미 딸 아이와 함께 딩크가 아닌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딩크를 선택한 부부의 이야기는 왠지모르게 내 삶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물론 이는 나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 또 다른 상황의 사람들은 아마도 다른 시점에서 위로와 공감을 받지 않을까 싶다. 소설 테트리스 부부는 많은 것을 말하고 나도 많은 것을 느끼고 공감했고 딩크 이야기는 그 일부일 뿐이니까.
아이를 애초에 가지지 않는 우리가 더 나쁜 인간인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찬란한 인생을 누려볼 누군가의 기회조차 애초에 박탈한 건 아닐까. 175p
결국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잊고 지내던 행복을 찾아보기로 마음먹는 결말까지, 씁쓸하면서도 그래서 더 묘하게 현실적이라 조금은 위로로 다가오는 그런 소설로 권제훈 작가의 테트리스 부부를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