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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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작가님의 장편소설 기병과 마법사를 읽었다.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작품의 문체가 유려하며 한국적이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멋지고 느낌있는 문장이 아니라,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잘표현하고 있어 말 그대로 읽는 맛이 느껴진다.

그런데 아버지, 저도 송곳인데요. 그렇게 가르치셨잖아요.
칼날이지. 품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대사는 짧게 끊어지지만 왠지 모르게 여운이 남는 문체다. 한번 읽고 내용이 진행되며 슥하고 넘어가는 대사가 아니라 왠지모르게 곱씹게 되는 문장.
한백림의 화산질풍검 이후 근 25년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멋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힘을 빼고 담백하게 날아드는 문장과 대사에서 왠지 모를 깊이가 느껴진다.

문장을 벗어나 소설의 내용은 판타지 장르에 가깝다. 판타지인데, 그리고 마법사가 제목에 떡하니 쓰여 있는데 내가 주로 즐겨 읽어왔던 서구적인 판타지장르의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이영도 작가의 피마새가 떠오르는 동양적이면서도 동서양의 세계관이 방대하게 얽힌 독창적인 세계관에 가깝다.

영윤해는 이제는 폭군이 되어버린 성군 영위의 하나뿐인 형 영유의 하나뿐인 딸이다.
대를 이어 가문을 유지하는 것은 포기하였으나, 가지고 태어난 목숨은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감추는 데 성공한 송곳 영유는 딸 윤해를 정략결혼을 위한 버리는 패로 이용한다.
문제는 그 정략결혼마저 멀쩡하지 않았다는 것, 뼈를 모으는 광인 종마금은 자신의 아내가 될 영윤해의 외모와 스물일곱이라는 많은 나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의 사냥개를 부려 그녀를 죽여 없애 살인멸구를 시도하고 그 때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를 통해 영윤해는 이능을 각성하게 된다.
스스로를 문으로 삼아 거대한 야수를 불러오는 소환 계통의 능력.
영윤해는 종마금을 곰개의 먹이로 주며 늘 도망치기만 했던 자신의 운명과 처음으로 정면으로 마주한다.

한국과 중국의 옛 정서가 물씬 풍기는 동양적인 세계관에 익숙해질때 즈음에 기병과마법사의 세계관은 그 벽을 넘어 더 위로 올라간다.
술름마리, 다르나킨과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며 거란과 여진처럼 느껴지는 고구려 북쪽의 기마민족이 떠오르는 부족이 등장해 그 세계관을 넓혀나간다.

이제 영윤해는 영위로부터 스며들듯 배운 병법에 관한 지식과 마법을 활용해 북방에서 다르나킨을 만나 날개를 달고 야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조금씩 떨쳐나간다.

왠지 모르게 소설을 끝까지 읽고나면 이제는 내용도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볼 때의 충격만큼은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르던 미드 왕좌의 게임이 떠오른다.

배명훈 작가의 기병과 마법사는 얼음과 불의 노래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르나킨을 보면 존 스노우가 영윤해를 보면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이 떠오른다.
규모도 다르고 그 유래도 다르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막아야 할 천년의 재앙은 장벽 너머의 백귀와도 겹쳐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오리지날리티가 살아 숨쉬는 작품이다. 마치 논문을 쓰는 것 같았다는 작가님 주변 사람들의 표현처럼 살아 숨쉬는 듯 생생하게 그려지는 전투가 아닌 전장의 모습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먹고 쓰여진 소설인지 생생하게 다가온다.

전쟁소설로도, 판타지로도 그리고 성장소설로도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었던 배명훈 작가의 여기가 원본인 판타지 '기병과 마법사'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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