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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 재판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1월
평점 :

오늘 읽은 책은 도진기 작가의 4의 재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 미스터리 소설인 정신자살의 작가로 무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퇴직 후 현재는 변호사로 개업하신 분이다.
흔히들 추리소설은 작가와 독자의 대결이라고 많이 표현하는데, 아무래도 여러 작중 장치들을 통해 속고 속이는 장르이다보니 얼마나 시원하게 속아넘어갔냐가 작품의 재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확실히 똑똑한 작가가 쓴 작품이 속는 맛이 일품인 것 같다.
이번 작품도 그랬다.
4의 재판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스포가 될까 걱정되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책을 덮은 후 제목을 보면 머리가 띵 해지는 충격과 함께 '아, 그래서!'하고 감탄하게 된다.
소설 4의 재판은 해외에서 증거없이 살해당한 채 유골로 돌아온 지훈의 약혼녀 선재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지훈과 함께 여행을 떠난 양길이 범인이라는 것을 이미 소설의 시작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는 양길이 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 정의구현의 철퇴에 얻어맞기를 간절히 바라며 법정싸움에 몰입하게 된다.
이 작품이 독특했던 점은 법정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있었다. 국내에서는 캄보디아 만삭 아내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비롯해 다양한 판례를 예로 들어 법적 쟁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심지어 미국의 O.J 심슨 사건까지 작중 변호사의 입을 빌어 설명된다.
작품 속 등장하는 법조인들의 설명은 단순히 판례해석에만 그치지 않고 법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또한 표현한다.
법의 원리원칙성을 믿고 주장하던 장인규 변호사와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의 차이를 비롯한 법을 집행하는 인간에 대한 날 선 비판적 시각을 가진 서찬휴 변호사까지, 작가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질문을 던진다.
작중 중립적으로 보이는 판사의 모습은 피해자의 편에 몰입한 독자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감정이 없는 재판기계처럼 느껴져 답답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차라리 '신호등'같은 재판기계가 등장하는 편이 낫겠다 싶기도 하다.
작품의 후반부, 판사의 짜증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선재의 모습은 진지한 장면이지만 실소가 나오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법조인의 경험을 고스란히 녹여 살린 법정물이다. 형사재판으로 시작해 민사재판에 이르기까지 법으로 싸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미스터리소설의 옷을 입고 실감나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단순하고 뻔한, 결말이 정해진 그런 법정드라마가 아닌 이 소설이 끝내주는 추리소설, 미스터리소설로 완성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결말의 반전까지 훌륭했던 도진기 작가의 4의 재판을 추천드린다.
아마도 변호사이자 추리소설작가인 도진기 작가의 정체성을 담아낸 최고의 결말이 아니었을까.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