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
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월
평점 :

오늘 읽은 책은 샤센도 유키 작가의 단편집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로 '낙원은 탐정의 부재'라는 독특하면서 재미까지 확실하게 잡았던 본격 미스터리 소설로 처음 접했던 작가의 신작이다.
띠지의 문구는 '젊은 비블리오마니아 샤센도 유키의 흉포한 상상력이 빚어낸 일곱 개의 이계'로 이 짧은 한 줄에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여럿 포함되어 있어 차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요소가 바로 '젊은'으로, 미스터리 소설이 계속해서 출간되고 출간되며 작품이 누적될 수록 작품에 사용될 수 있는 장치들을 새롭게 고안해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최신의 미스터리 소설을 써 독자를 새롭게 속여넘겨야 하는 신예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은 새로운 장치를 위한 다양하고 처음 도전하게 되는 온갖 시도들로 가득해 보는 맛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작가의 전작 낙탐부야 말로 그런 특수설정 본격 미스터리 소설의 정수라고 생각했었는데 새롭게 출간된 단편집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는 그 이상의 기괴하고 폭력적인 상상력들로 가득한 단편작품이 무려 일곱편이나 수록되어 있었다.
원래 단편작품집을 읽게 되면 가장 인상적인 작품 한두편을 위주로 책을 소개하곤 했었는데 이 작품은 모든 단편 하나하나가 상상을 초월하는 기괴한 세계관과 설정으로 가득해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표제작이자 첫번째 수록작인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는 모든 책을 불태우고 사람이 책이 되어 이야기를 담고 타인에게 전하는 기묘한 세계관에서 펼쳐진다. 여기까지라면 독특한 설정이구나 싶겠지만 샤센도 유키의 흉포한 상상력은 책 끼리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중판이란 재도를 통해 말 그대로 패자를 분서시켜버리는 잔혹함까지 제대로 보여준다. 이 작품이야말로 수록작중 가장 추리소설의 요소가 강했는데, 책들끼리 서로가 옳다고 증명하기 위해 상대의 논리적 헛점을 노리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논쟁을 벌이는 구도가 추리소설의 추리파트와 가장 흡사했기 때문. 거기에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 역시 익숙한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의 대중적인 작품이라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몹시 재미있는 단편이라 이 세계관이 단편으로 끝나는게 아쉬울 때 즈음 깜짝 선물처럼 한편이 더 등장해 완결감을 주는 점까지 퍼펙트!
'도펠예거'와 '통비 혼인담' 그리고 '데우스 엑스 테라피', 이 세편의 단편은 미스터리소설보다는 기괴하고 폭력적인 상상력으로 빚어낸 SF소설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무한히 반복되는 저택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소녀의 이야기와 '성'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생활하지만 종종 통증에 고통받는 통비들의 이야기 그리고 1800년대 후반 조증 치료를 위해 섬에 있는 요양시설로 떠나는 환자의 이야기는 작가의 SF적 상상력과 만나 끝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기괴한 이야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금붕어 공주 이야기'로 한 사람에게만 비가 오는 이상현상을 그리는데 몽환적인 소재와 달리 무척 현실적인 이유로 몸이 물에 불어 익사해가는 강루현상을 통해 아련하게 여운이 남는 독특한 분위기의 단편이었다. 샤센도 유키라고 하면 추리소설도 쓰고, SF, 청춘소설, 라이트노벨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고 하더니 이 작가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역시 샤센도 '유키'라는 감탄이 절로 드는 폭력적이고 기괴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단편집이었으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이쪽 세상에서도 폐가 없는 책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아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 소설이 쭉쭉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일본특유의 여운을 남기는 씁쓸한 감정과 기괴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샤센도 유키의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를 추천드린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냥 책장에 꼽아놓는 것 만으로도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이 다시 떠오르게 하는 기묘한 등뼈제본 역시 한번 경험해보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