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V의 투숙객 그늘 단편선 1
양지윤 지음 / 그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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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윤 작가의 단편소설집 호텔 V의 투숙객을 읽었다.

작가의 말을 포함해 117페이지의 얇은 분량에 세개의 단편이 꼭꼭 눌러담아져있었던 이 단편소설집은 왠만한 벽돌책보다 읽으며 생각할거리들이 많았고 읽은 후 남는 여운이 깊었다.

나는 양지윤 작가를 이 소설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기이하게도 이 책을 읽고나니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지만 그보다 작가 그 자체에 더 호기심이 생겨났다.

호텔 V의 투숙객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우리의 시간'과 '광인과 나'까지 총 세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역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표제작인 '호텔 V의 투숙객'이었다.

평소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해 추리소설이라면 동서양을 가리지않고 마구 읽어대던 나에게 이 작품은 낡았지만 오히려 고풍스러운 호텔 V에서 일주일씩 연장하며 오랜 기간 묵고 있는 기이한 투숙객의 사연이라는 왠지 모르게 신비롭고 어딘가 음습해보이는 이 이야기는 몹시 흥미로운 작품처럼 느껴졌다.

물론 지금은 내가 생각하던 그런 미스터리 소설이 전혀 아님을 알고 있다.

비밀스러운 사연을 가졌을 것 같은 여인도, 호텔 V에서는 조금 특이하지만 결국은 그냥 머물렀다 갈 한 명의 투숙객에 불과하다.

여인이 매 번 방 문 앞에 걸어 놓는 'Do not disturb'만큼은 조금 독특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호텔의 청소부, 종업원 그리고 지배인까지 여인의 주변을 스쳐지나가듯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나면 결국 이 단편소설은 호텔을 거쳐 지나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실 다 읽는 순간까지 이야미스의 끈을 놓지 못했지만 어찌되었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남는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이를 넘어서 좁은 해변가에 자리잡은 낡은 호텔을 담은 그 풍경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진다.

특히 여운이 남는 부분을 소개하자면.


직원들이 매일 보는 바다가 지겹지도 않냐고 물었다.

"세상에 같은 바다는 없어요."

그녀가 대꾸했다. 그건 틀린 말이다. 바다는 이론상 똑같다. 육지는 끊어져 있어도 바다는 끊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23p 호텔 V의 투숙객 중에서.


내가 보기에 인생이란 포악한 고양이 한 마리로 뒤집어지는 텃밭처럼 만만한게 아니지만 어쨌든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63p 우리의 시간 중에서.


한편 한편, 한 페이지씩 아껴가며 음미하게 되는 작품들을 꼭꼭 눌러담은 단편소설집 호텔 V의 투숙객의 여운을 연말을 맞아 모두와 공유하고 싶어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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