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지옥을 끌어안고서
김창현 / 포레스트 웨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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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 작가의 장편소설 '지옥을 끌어안고서'는 제목부터 강렬하다. ‘지옥’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각인된 죄와 그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숙명을 가리키는 듯하다. 작품은 독일의 외딴 시골집에서 시작된다. 고요를 깨는 한 발의 총성으로, 한 노인의 은둔 생활이 끝나고, 아버지의 원한을 품은 청년이 그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총구가 겨눠진 그 짧은 순간, 독자는 두 세대를 넘어 이어져 온 복수와 속죄의 고리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은 삼대에 걸친 복수와 원한의 서사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1부는 ‘쫓기는 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피카레스크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으며, 대부분의 인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목숨쯤은 가볍게 버릴 수 있는 악인들이다. 배신과 음모, 거짓과 죽음이 반복되는 무간지옥 같은 세계 속에서, 인간의 추악함과 생존 본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땐 배짱 있는 녀석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복종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냥개일 뿐이었다. 늙고 병이 들면 버려지는 사냥개.

김창현 작가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는 단편 시절의 장점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장편이 되면서는 그 리듬감이 심리 묘사와 함께 더 깊어진다.

2부에서는 ‘쫓는 자’, 즉 복수의 주체가 되어버린 남자의 시선으로 서사가 전환된다. 그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살아왔지만,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복수의 이유가 허물어지고, 결국 용서와 속죄의 경계에 선다. 김창현은 폭력과 인간성, 죄와 구원의 문제를 단순한 선악 구도로 풀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인물이 ‘죄지은 인간’이자 ‘속죄를 꿈꾸는 인간’으로 공존하며, 그것이 이 작품을 피카레스크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는 묵직한 군상극으로 만든다.

작품의 또 하나의 백미는 언어의 생생함이다. 전라도 사투리와 조선족 말투가 정교하게 섞여 등장하는데, 거칠고 때로는 투박한 대사는 등장인물의 현실을 더욱 실감나게 만든다. 덕분에 읽는 동안 문장이 리듬을 타듯 술술 넘어가고, 그 생동감 덕에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옥을 끌어안고서'는 하드보일드 느와르의 정수다. 남자들의 땀냄새와 비릿한 피냄새가 뒤섞인 세계에서, 인물들은 끝내 자신과 싸우고, 결국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무너진다. 그리고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그 사실하나만으로도 작품은 긴장감을 끝까지 끌어올린 채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계속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물한다.

결국 이 소설은 피로 물든 복수극의 외피를 쓴 채, 인간이 얼마나 오래 자기 죄와 마주하며 견딜 수 있는가를 묻는다. ‘지옥을 끌어안고서’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 또한 그 뜨거운 지옥을 함께 품게 된다.

무엇보다 낚시터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긴박감넘치던 폐차장전투씬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이유가 충분했던 작품으로 영화 무간도와 신세계를 재미있게 보셨던 모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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