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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땅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7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무려 아가사 크리스티를 넘어섰다고 평가받는 엘리스 피터스 작가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17번째 작품 욕망의 땅을 읽었다.
원제는 도공의 땅! 도자기를 굽는 땅에서 발견된 여성의 시신을 중심으로 소설 '욕망의 땅'은 정의와 사랑 그리고 용서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보통 서평을 쓰게 되면, 특히 캐드펠 수사 시리즈와 같은 추리 소설에 관한 서평을 쓰게 되면 책의 중반부를 넘어간 부분부터는 소설 속 내용을 언급하거나 인상적인 구절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추리 소설을 꽤 많이 읽은 독자라면, 그리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어디서 어떻게 스포일러를 당할 지 모르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의 땅'의 가장 인상적인 글귀는 이 소설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캐드펠의 대사다.
"우리의 정의라는 것은 간혹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도 모르오. -중략- 악이 선으로, 선이 악으로 비쳐지기도 하지. -중략- 하지만 서두르지 않는 한 하느님의 정의는 결코 실수가 없는 법이지." 351p
이야기의 시작은 수도원에 기증된 땅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사망한 여성의 정체와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캐드펠은 단순한 추리 이상의 문제인 인간의 양심과 관계의 복잡함을 마주하게 된다.
중세 명탐정 캐드펠은 수사이자 약초전문가로 그간 걸어온 그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통찰과 따뜻한 시선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 그는 증거와 논리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 이상의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며 진실에 다가선다.
이 소설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이 모두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자 나름의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그 복잡한 내면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 소설을 읽고 있는 나조차 작 중 등장인물들을 책 밖에서 훤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서도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알 수 없게 된다.
또한 작품은 중세 전쟁의 불안과 종교적 긴장이 일상 속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배경으로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로서도, 역사소설로서도 훌륭한 것은 이런 사건의 배경에 대한 묘사에 철저한 고증이 들어갔기 때문일 듯.
범인을 찾는 추리물로서의 재미도 충분하지만, 결국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용서에 있다.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코 냉소적이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시선으로 마무리되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 캐드펠 서포터즈로 서평을 쓰며 다시금 떠오른 건, 캐드펠이 말없이 보여주는 인간 존중의 태도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