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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세계의 신과 내일 비가 올 확률
경민선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5월
평점 :
고장 난 세계의 신과 내일 비가 올 확률 경민선 지음 안온북스 출간 서평

경민선 작가님의 고장 난 세계의 신과 내일 비가 올 확률을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은 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이후 두 번째로 접하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이전작 만큼이나 독특한 설정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가 인상깊었습니다.
긴 제목부터가 굉장히 많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이 두 연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소설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소설 속 주인공 박리아는 빈부격차가 극도로 심화된 가상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소설 속 대한민국은 쓰레기를 평균소득이 낮은 동광시에 몰아 버리기로 결정하고 가난은 가난을 불러 전국의 소외된 계층들은 이 쓰레기를 주워 푼돈을 벌기 위해 동광시로 몰려들게 됩니다. 그렇게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분해해 금속을 녹이고 부품을 뜯어 적은 돈을 벌며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폐기품을 기부받아 먹고 사는 일명 '광산마을'에 살고 있는 박리아는 이름 그대로 버거리아라는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진 것 없이, 미래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리아는 오래 전 한 대학의 연구실에서 버린 슈퍼컴퓨터를 몰래 숨겨 가지고 있는데요. 리아는 버려진 하드디스크에 있는 잡다한 정보를 컴퓨터에 학습시켜 하루에 하나씩 세상의 숨겨진 규칙을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인과관계의 정보들입니다. 예를 들면 보름달이 뜬 다음날이면 동광시청 공무원들이 외근을 나올 확률이 20퍼센트 증가한다, 남산에서 관측한 북극성 밝기와 템스강 오염도는 비례관계에 있다 같이 아무 상관없어보이며 이해도 쉽지 않은 규칙들입니다.
정말 믿기 힘든 일이지만 리아는 데이터마이닝컴퓨터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이런 규칙이 어떤 복잡한 인과관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잠깐 고장이 났을 뿐이며 그 사실을 컴퓨터가 알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컴퓨터에 동광시에서 성황리에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동광카지노의 데이터가 담긴 하드디스크가 입력되며 이제 리아의 컴퓨터는 실질적으로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들을 출력하기 시작합니다.
습도가 50에서 49로 떨어진 뒤 5초내에 던져진 주사위의 눈은 1이다.
동광 시영아파트 북문 앞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일때 나온 카드는 7,8,10 뿐
동광시 인남동 K마트 뒤쪽 직원용 자동문이 열려 있을 때 나온 카드는 10 이상
FM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여자 가수의 노래가 나오는 순간에 뽑힌 카드에는 Q,K가 없다
리아는 이 규칙을 가지고 카지노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로 결심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그제서야 단 1원으로 인생을 바꾼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무려 1원으로 시작해 올인 배팅을 40번 이어가는 말도 안되는 확률의 게임 끝에 그녀는 카지노에게도 치명적인 금액인 1조를 따 내겠다고 선언합니다.
소설은 얼핏보면 리아가 초능력처럼 보이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규칙을 통해 거대 카지노와 승부하는 통쾌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이 그동안 살아왔던 꿈도 희망도 없는 말그대로 쓰레기장 같은 인생에 대한 표현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의 대화는 비속어가 빠지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만큼 원색적이며 날 것 그대로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생생하게 다가왔고, 가지지 못한 자들의 얼마 되지 않는 가진 것 까지 착취하고 이용해먹으려는 빌런들, 소장과 공무원 역시 그것이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생존방식인 마냥 결국에는 인간적으로 다가와 놀랐습니다.
앞 선 이 무거운 이야기들 때문에 결말이 더 기억에 깊게 남을 것 같은, 어딘가 기묘하고 신비한 느낌이지만 또 어딘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실보다 더 암울한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 경민선 작가의 '고장 난 세계의 신과 내일 비가 올 확률'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