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류 사이드미러
여실지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텍스티 출판사의 신작 난기류는 현대 사회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직장내 괴롭힘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다. 대한항공이 떠오르는 가상의 국내 1위 항공사 알파에어를 배경으로, 위계가 강하고 폐쇄된 조직 속에서 점점 파멸해가는 인간 군상을 냉철하고도 서늘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여실지 작가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화두를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로 그리지 않고, 시스템에 의해 조장되고 강화되는 피지배층 간의 갈등으로 묘사함으로써 작품에 깊이를 더했다. 무엇보다 피해자 역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일수 있다는 점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소설은 두 명의 여성 승무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1부는 은하의 이야기다. 온화하고 사회성이 좋은 은하는 노조 활동을 하며 이상을 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상부의 지시로 인사팀 업무를 맡으면서 동료들로부터 고립된다. 회사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떠맡은 은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료의 징계에 일조하게 되고, 결국 노조 선배의 비극적 죽음 앞에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짓눌린다. 가혹한 업무, 동료들의 냉대, 점점 깊어지는 죄책감 속에서 은하는 A380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 삶을 끝낸다.

2부는 은하의 죽음 이후, 그 자리로 들어온 신입 승무원 수연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은하와 닮은 구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연은 터부시되고, 가혹한 괴롭힘을 견뎌야 한다. 수연은 처음에는 꿋꿋하게 버텨보려 하지만, 점점 외로움과 두려움에 짓눌린다. 노조에 가입해보지만, 노조마저 부패로 붕괴되고 만다. 기대할 곳도, 기댈 사람도 없는 현실 속에서 수연은 LA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러나 기체는 난기류를 만나게 되고, 기묘한 사건들이 꼬리를 문다.

이 소설에 정말 감탄했던 부분은 수연 역시 직장내 괴롭힘을 직접 겪기 전에는, 은하가 겪고 있는 고통을 '출근 할 수 있는 자들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치부했다는 점이다. 결국 돌고 돌아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이는 직접 경험해봐야 얼마나 괴로운지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적인 공포를 느끼게 한다.

난기류는 서사의 구조 또한 탁월하다. 1부는 다중 시점으로 은하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행동한다. 이들의 다양한 시선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주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2부는 수연의 단독 시점으로 전개된다. 이수연이라는 인물에 집중함으로써, 독자 역시 점점 조여 오는 공포와 압박감을 체감하게 된다. 작가가 선택한 이 대비는 이야기의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특히 난기류는 '괴물성'에 대한 통찰을 품고 있다. 괴물은 단지 가해자만이 아니다. 소설은 괴물은 사회적 구조 속에서 태어나며, 때로는 피해자 또한 다른 누군가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혹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스스로 악해진다. 그것이 일터의 비극이다. 여실지는 이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묘사해낸다. 덕분에 인물들은 단순한 선악의 도식에 갇히지 않고 입체적인 케릭터로 다가온다.

작품은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현실을 교묘히 엮어낸다. 승무원 대량 해고, 무급 휴직, 줄어든 인력과 늘어난 업무 강도. 항공업계의 붕괴 속에서 승무원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지고, 그 안에서 괴롭힘과 고립은 심화된다. 이 배경은 난기류에 더욱 설득력과 현실감을 부여한다. 이 작품은 항공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직장이라는 공간, 일터라는 시스템 안에 갇힌 모든 이들의 이야기다. 특히나, 알파연대가 해고 때문이 아닌 감축시대에 적응한 인원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 때문이라는 점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와 감탄하게 된다. 항공사는 아니지만 내가 경험해본 직장생활도 대부분 그랬으니까.

난기류는 단순히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릴러로서의 긴장감도 훌륭히 살린다. 특히 기내에서 벌어지는 난기류와 그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작가는 한편으로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장르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난기류를 읽는 내내 독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후반부에는 오컬트적인 요소도 적극 활용하여 장르문학의 재미를 선물한다.

난기류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어두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그 안에 놓인 인간 군상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난기류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일터라는 이름의 지옥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 난기류를 추천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