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팬텀 시그널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33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3월
평점 :

네오픽션 출판사의 ON시리즈의 33번째 작품 조선희 작가의 팬텀시그널을 읽었습니다.
팬텀 시그널
외부환경을 인지하는 통로가 닫힌 마인드 트랩 상태에서 발동하는 방어기제 신호.
뇌는 스스로 탈출로를 찾아 새로운 시냅스를 생성하고, 그 자극으로 특정 시그널이 나타난다.
교차로, 건널목, 횡단보도, 다리, 신호등, 도깨비불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보통은 하나 이상이 보인다.
소설 팬텀시그널은 모계 유전으로 발현되는 일종의 기이한 초능력을 지닌 3대의 모녀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소설 팬텀 시그널에 등장하는 기이한 초능력은 그 설정에 매우 공을 들인 티가 확연히 드러날정도로 꼼꼼하고 복잡하고 다채롭게 진화합니다.
그 능력은 무의식 중에 떠다니는 먼지와도 같은 존재인 벌레가 대상에 접촉하며 발현되는데 일종의 싸이코메트리 혹은 마인드컨트롤, 빙의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주인공 수우는 이 능력을 처음 자각한 후 맹인인 자신의 이모의 의식을 자신의 몸으로 불러들여와 자신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을 이모에게 대리체험하게 해 줍니다.
수우의 엄마는 수우에게 능력을 사용하지말라고 경고하지만 수우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자신이 그 능력을 사용해보고 수우가 '찰나'라고 이름 붙인 벌레를 통해 실패와 아픔을 겪어봐야만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요.
수우의 이모가 맹인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수우의 몸을 차지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소설 팬텀 시그널은 딥-다크하게 그리고 암울하면서 무겁게 시작됩니다.
충격적인 서장이 끝난 후, 중년의, 이제는 중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수우의 시점에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수우는 찰나를 통해 몇번의 시도를 했었고 그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복수심 중에 복수심만 남게 되어 다시는 찰나를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 채 평범한 중년의 삶을 살가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무겁게, 더 어둡게, 더 무서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앞선 암울함이 비현실적인 공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수우의 이야기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이라 더 무서운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누구나 영원한 행복을 꿈꾸며 결혼을 하고, 사랑이 결실을 맺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그렇게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살아가겠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비틀리기 시작한 가족들의 관계는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하며 소설로 보고 있음에도 숨이 막힐듯 하게 느껴집니다.
딸도, 남편도 소설 속 수우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숨이 턱 막혀옵니다. 그리고 결국은 어떻게든 부딛히고 깨지며 개선을 바라며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소설 팬텀시그널은 독창적이면서 새로웠던 소재에 걸맞게 소설의 시점이 굉장히 독특했는데요. 수우가 인식은 하고 있지만 의식은 하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의 먼지와도 같은 벌레 '찰나'의 시점에서 표현됩니다. 그래서 모든 문장은 '너는'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데 이 점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의식과 의식이 섞이고 뭉개지는 소설 속 이야기 처럼 '너는'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소설의 시점은 소설의 몽환적이고 어딘가 안개낀 듯한 음슴한 답답함을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듯 합니다.
돌고돌아 결국은 독특한 시점에서 담담하게 사랑과 용서 이해 그리고 복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소설 팬텀 시그널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