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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충 박멸기 ㅣ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
이진하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열린책들 한국문학소설선 이진하 작가의 설명충박멸기 서평

이진하 작가의 설명충 박멸기를 읽었습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엽편소설 27작품이 수록된 단편집이었는데요.
수록된 엽편소설 하나하나가 매우 독특하며 때론 보통 사람들이 정해놓은 선을 아득히 넘어가기도, 그저 재미있고 웃기기도 하고 어떤 작품들은 가슴아린 여운을 남기기도 하는 정말 다양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로 가득했습니다.
엽편소설은 나뭇잎 넓이 정도의 크기에 담아낼 수 있는 소설을 가리키는 말로 단편소설보다도 더 짧은 소설을 말하는데 어떻게 이런 짧은 분량의 작품으로 장편을 읽은 듯한 깊은 여운을 주는지 돌이켜생각해봐도 놀랍기만 합니다.
스물일곱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한사람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다양한 관점에서 소설을 썼다는 것이 느껴졌는데요.
작품 '음모'와 '메리고라운드', '론다로 가는 길'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자녀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으로 표현합니다.
음모에서는 출산을 저해하는 존재들을 외계인에 빗대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리가 없지! 라고 하며 인간이하의 존재로 신랄하게 비판하여 임신과 출산의 긍정적인 면을 유쾌하게 써내려가지만 메리고라운드에서는 우리가 겪는 모든 것들을 결국 겪게될 후손에 대해 조금은 회의적인 시선을, 그리고 론다로 가는 길에서는 결국 이 모든 것에 대한 한계를 표현하는 것 처럼 느껴졌거든요.
스물일곱편의 작품을 연달아 읽었지만 하나하나의 개성이 강해 돌이켜봐도 그 내용과 읽으며 느낀 점들이 모두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크게 소리내서 웃었던 이비인후과 의사가 '설명충이네요.'라며 진단을 내리던 장면과 아직도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전봇대의 유래는 아마 이진하 작가의 설명충 박멸기를 읽은 독자라면 아마 모두 공감하시겠지요?
읽고 있을 때는 무척 재미있고 유쾌했지만 다 읽고 나면 묘하게 반영된 현실 덕분에 씁쓸해지는 '플라잉 학원', '면접관의 슬픔', '어떤 유행' 등.
어느 정도 공감이 가나 싶은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보편적인 선을 아득히 넘어가 폭주해버리는 이야기가 특히 즐거웠던 '피르가슴'.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며 표시해두었다 다음날 한번 더 읽게 되는 '아키라의 왕국', '니카, 니카'.
특히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엄선해서 소개드리며 스물일곱 작품 중 어떤 작품을 읽어도 오랜 시간 기억될 것 같은 짧은 작품들로 가득했던 소설집 이진하 작가님의 설명충 박멸기를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행동입니다. 저는 회사와 결혼한다는 생각으로 미리 정관수술을 했습니다. -면접관의 슬픔
묘선 씨를 위해 저는 그 좋아하던 똥도 끊은 개입니다. -아내의 개
'밖에서는 센 척해 놓고 집에 가서는 설거지하겠지.'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그 후보는, 그래서 고개를 숙였다. -남편의 기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 웃는 얼굴.
나는 말했고.
제발 나를 울게 내버려둬.
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메리고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