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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 호러 × 제주 ㅣ 로컬은 재미있다
빗물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4년 11월
평점 :
고딕 × 호러 × 제주 빚은책들 출간박소해 홍정기 전건우 외 7인의 앤솔러지 서평

저는 단편소설집도 좋아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앤솔러지의 매력에 빠진 듯 합니다.
일정한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따른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출간한 책을 보면 왜 앤솔러지의 기원이 꽃다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anthologia인지 공감하게 됩니다.
이번에 박소해 작가의 기획에 의해 2년만에 예스24 크레마클럽을 통해 공개되며 책으로도 출간된 고딕호러제주는 무려 [괴이학회]의 일곱 작가가 제주와 호러 그리고 고딕이라는 주제로 써내려간 단편을 모아 만든 앤솔러지로 이제는 가깝게 느껴지는 관광지로서의 제주가 아닌 아픈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제주도 만의 풍속과 신앙을 담아 이를 공포소설이란 장르속에 녹여내 어떻게 보면 더욱 가슴아프게, 그러나 정통역사소설보다는 훨씬 마음 편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총 일곱편의 단편들 중 특히 제 취향에 맞았던 작품들을 소개하자면.
[너희 서 있는 사람들] -WATERS
탐정이 등장해 미스터리 소설을 보는 듯 흥미롭게 시작했지만 앤솔러지의 주제에 맞게 오컬트 호러로 마무리되는 단편으로 변질된 존재로 인한 공포를 그립니다. 송나라 호종단이 제주도의 지맥을 끊고 돌아갈 때 매로 변신하여 이들을 무찌른 제주도의 수호신이자 한라산의 호국신인 광양당신이 등장하지만 더이상 정의롭지 않게 타락하여 변질된 수호신으로 인한 공포를 집성촌이라는 폐쇄된 환경과 사이비종교처럼 보이는 오컬트적 요소를 더해 표현합니다.
[청년 영매_모슬포의 적산가옥] -이작
오컬트 호러라는 키워드에 딱 어울리는 단편이었습니다. 파묘와 곡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제주도 버전으로 재탄생한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주도의 토속 수호령과 일본장교 원귀의 대결구도와 빙의라는 소재에 제주도 방언을 활용한 유머를 곁들여 부담스럽지 않게 술술 읽혔습니다.
표준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으면서 일부러 제주도 방언으로 말하는 제주도의 수호령이 공포스러운 분위기에도 적절하게 웃음을 줍니다.
제주도 방언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 앤솔러지의 작품들중 유일하게 작중 주인공도 저처럼 방언을 잘 알아듣지 못해 공감됩니다.
[구름 위에서 내려온 것] -박소해
앤솔러지 작품 중 가장 제주도의 색채가 강한 단편으로 결7호작전이라는 패망한 일본 최후의 본토 방어전을 준비하는 일본군과 이를 외신의 힘을 빌어 징벌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알게 됩니다. 설문대할망의 존재를 통해 외신의 공포를 굉장히 잘 표현해 마치 크툴루가 연상됩니다.
직접 바닷속 흙을 떠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설망대할망은 무녀의 양쪽 두눈이라는 비교적 적은 제물을 받고 소원을 이루어 줍니다. 이 계약은 마치 외신의 언어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약간의 재미를 가지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크툴루 신화 속 외신들처럼 느껴집니다. 제주도를 직접 만들었으면 토착민에 대해 약간의 애착이 있을법도 한데 마치 개미를 대하듯 피아식별없이 머리의 붉은 띠를 통해 살육의 대상을 가린다는 점이 특히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붉은 띠가 부족해 제주도 토착민도 목이 뎅강뎅강 썰려가니까요. 결국에는 머리는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재미있는 호러 소설이었습니다.
[등대지기] -홍정기
반전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 추리소설작가로만 알고 있던 홍정기 작가님의 단편호러 등대지기입니다.
요즘 인터넷 글들을 보면 [2억받고 외딴섬에서 등대지기 vs 안하기] 같은 밸런스 게임이 많은데 돈에 넘어가 이 일을 받아들인 자의 최후가 제게도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어도라는 배경을 제외하면 마지막 반전은 호러가 가미된 본격 미스터리처럼도 느껴집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분명 귀신이 제일 무서웠는데 다 읽고나면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지는 걸 보면 역시 사람만큼 무서운 건 없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제주도를 주제로 써내려간 책이라면 제주도 여행을 갈 때 한권 딱 챙겨서 제주 앞바다의 따뜻한 햇볕을 쐬며 읽을 때 추천하면 딱 좋을 것 같지만 이 책은 오히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제주도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느껴집니다.
익숙하지만 또 익숙하지 않은 제주도의 아픈 과거와 제주도만의 전통과 신앙을 이용해 써내려가는 공포 단편은 제주도를 넘어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까지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하네요.
무엇보다 등골 오싹해지는 호러소설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부터 발생되는 공포를 잘 그려낸 앤솔러지 고딕호러제주를 추천드립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 빚은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