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끝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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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그리고 내가죽인사람, 나를죽인사람으로 유명한 히가시야마 아키라 작가의 죄의 끝을 읽었다.


소설은 대만의 근현대사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져 오는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그려냈던 '류'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소행성 충돌 전의 구세계와 소행성 충돌 당시의 혼란을 거쳐 디스토피아가 된 세계관 속에서 기득권과 소외층이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통해 신화가 된 남자 블랙라이더 너새니얼 헤일런의 일대기를 그린다.


너새니얼은 말이야,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괜찮아. 당신이 인간을 먹은 건 죄에 의해 정화된 죄야. p157


소행성의 충돌으로 50억이 넘는 인구가 사망하고 세계는 분진으로 덮혀 기온이 내려가고 식량난에 허덕이게 된다. 소행성의 충돌에서 피해가 적은 지역은 캔디선이라는 구역으로 격리되어 기득권자들의 구역이 되고 캔디선밖의 생존자들은 아사를 피하기 위해, 지켜야 할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결국은 시신을 먹기에 이른다.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너새니얼은 그를 신으로 추앙하던 구세계의 식인살인광 대니 래번워스에 의해 신으로 추앙받고 너새니얼의 행보는 과장과 곡해를 거쳐 캔디선 밖의 소외된 자들의 신화가 된다.


소설은 이미 신화로 전해지는 블랙라이더 너새니얼헤일런의 이야기를 네이선발라드의 시선에서 그려가는데, 네이선발라드의 이야기 역시 씁쓸하며 구슬프다.

네이선은 스카우트로, 백성서파의 타겟이 된 사냥감들을 수색해 화이트라이더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네이선이 백성서파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아내 마리앤은 캔디선 내부의 정신이상자에게 살해당하고 방황하던 네이선은 조언에 따라 자신이 캔디선 밖에서 겪은 너새니얼의 이야기를 책으로 집필하기 시작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는 노아 던의 백성서교와 블랙라이더 너새니얼의 대립으로 구성되는데 이 소설의 매력적인 포인트는 소설 속 악역이어야 할 백성서교의 시작이었던 노아 던의 이야기 역시 매우 성스럽게 그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노아의 사망 역시 너새니얼의 신화 못지않게 신성이 흐르고 있어 선과 악은 관점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백성서파나 화이트라이더의 정의 역시 149p가 넘어서야 표현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필력이 대단해 전해줘야 할 정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어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라 이해할 수 있었다.


블랙라이더의 존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를 짓고 그 죄는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인간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다. 너새니얼 헤일런이 없었다면 중서부와 남부의 사람들은 식인의 중압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p23


특히나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부분이 백성서파와 블랙라이더의 대립구도였는데 진정한 신앙을 지니면 굶주리지 않는다는 백성서파의 교리와 식인은 죄에 의해 정화된 죄라고 말하던 너새니얼의 교리는 마치 이상과 현실처럼 정면으로 충돌한다.

캔디선 안의 굶주리지 않은 자들은 백성서교의 이상을 충분히 쫓을 수 있었고 캔디선 밖의 굶주린 자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너새니얼을 신앙삼아야만 했다.

이 부분이 지독히도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까닭은 캔디선 안의 굶주리지 않은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단순히 캔디선을 피와 총으로 지키고 있는 것을 넘어 굳이 캔디선 밖으로까지 화이트라이더를 보내 그들의 교리에 반하는 자들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너새니얼 헤일런을 죽이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요? 이 여행에서 우리는 그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대부분은 나쁜 소문은 아니었구요."

"나쁜 소문을 내는 녀석은 다 놈에게 살해당해서겠지." p309


무엇보다 너새니얼의 신화 역시 관점에 따라선 선과 악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며 그 이후의 이야기는 소설 속 살아남은 자들에게 맡기며 마무리된다.



SF소설이란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처럼 히가시야마 아키라 작가의 소설 죄의 끝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바탕으로 새롭게 써내려가는 종교의 이야기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읽을 때도 소설에 포함된 수많은 상징성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면 더 많은 고민이 생겨나는 작품, 죄의 끝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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