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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법추리
이가라시 리쓰토 지음, 허하나 옮김 / 폭스코너 / 2024년 10월
평점 :

이가라시 리쓰토 작가의 신작 육법추리를 읽었습니다.
이가라시 리쓰토 작가는 묵직한 여운을 남겨주던 전작 법정유희로 알게되었고 1990년생으로 일본에서 떠오르는 신예미스터리소설 작가입니다.
도호쿠 대학 법학부를 졸업 후 사법고시까지 통과해 정식 변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주특기인 법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로 법을 잘 모르는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 몰입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쓰고 있습니다.
이번 폭스코너를 통해 출간된 신작 육법추리는 연작소설집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다섯가지 청춘 일상 미스터리를 통해 냉철한 '법률기계' 고조와 번뜩이는 기지로 진상을 파악하는 도가 콤비의 성장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미스터리 장르에 걸맞게 무거운 주제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기도 하구요.
'무료 법률 사무소- 혼자 고민하지 말고, 부담 없이 무법률로!' p11
고조는 법대생으로 무료법률상담소, 무법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내에서 '법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법률적 지식을 제공하는 활동입니다.
언뜻보면 법을 전공한 학생의 가벼운 취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무법률의 유일한 생존자 고조는 사명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상담에 임합니다.
"무료라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 감정 없는 법률 기계, 원통함에 눈물 흘린 상담자가 셀 수 없다.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너덜너덜한 상태로 쫓겨난다. 무법률에 상담할 바에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편이 낫다..." p18
물론 무법률은 냉혹한 법률기계라는 고조의 별명처럼 상담자의 사건 해결보다도 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우선으로 따지기 때문에 좋지 않은 소문들과 함께 점점 쇠락해 가고 있습니다.
육법추리는 연작소설답게 다섯편의 단편을 이루는 다섯건의 사건으로 고조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나갑니다.
홀로 남은 무법률에 엉뚱하고 얼핏보면 무례해보이지만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고조의 폭주를 막아주는 '자칭 조수' 도가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무법률에 왜 단 한명만이 남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법률과 고조는 어떻게 될지를 흉흉한 사건들 속에서 청춘의 푸릇푸릇함이 드러나게 이야기 합니다.
소설 중간 중간에 위치한 막간 파트는 연작소설을 커다란 한 줄기로 이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냅니다. 고조의 부모님은 판사와 변호사, 친형은 검사로 엘리트 법조계 집안이지만 흔한 클리셰처럼 엄하고 자식에게 과한 기대를 하는 그런 가족은 아닙니다. 모두 고조를 사랑하고 따듯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형은 좀 틱틱거리는 것 처럼 보이긴 하지만요.
악의에 상처받고, 말없이 참고 견디는 동안은 불쌍한 약자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고 맞서는 순간, 비판에 노출된다. 이기적이고 불쾌한 사고방식이다. p114
다섯건의 사건은 하나같이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연인간의 은밀한 영상 유출이나 막장 부모 문제, 직장내 희롱과 방화사건과 같은, 교내 무법률이 아니라 정식 변호사를 찾아가야 할 것 같은 어두운 사건들을 통해 작가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 역시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따뜻한 코코아가 든 컵을 도가 앞에 내려놓은 여성 점원은 그대로 앞치마를 벗고 우리 앞에 앉았다.
"보세요. 코코아와 함께 나타났죠?" p245
민법, 민사소송법, 상법, 형사소송법, 형법에 헌법을 더해 육법을 바탕으로 교내의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법률 자문을 도와주는 고조의 육법추리.
어둡고 무거운 소재지만 어딘가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는 고조와 도가 콤비 덕분에 마무리까지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던 법정추리소설로 육법추리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