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랑전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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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삼체의 번역가로 더 익숙한 작가 켄 리우의 단편소설집 은랑전을 읽었습니다.


켄 리우 작가가 SF소설로 휴고상을 수상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약력이 정말 놀라웠는데요. 중국계 미국인으로 하버드를 졸업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다시 하버드 법학대학원을 졸업하더니 이제는 기술전문변호사로 일하며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네요.


책을 오늘 점심즈음에 받아서 네다섯시간 동안 정신없이 몰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보통 단편소설집이라고 하면 비교적 짧은 분량의 에피소드들로 여유롭게 한 편씩 틈틈이 보곤했는데요, 이번 은랑전의 단편소설들은 하나하나 그 색체가 다르면서도 놀라운 상상력으로 SF의 형식 안에서 여러 현대사회문제를 담아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어서 몰입감이 대단했거든요.


종이 동물원의 작가 켄 리우의 소설 은랑전은 총 13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중 표제작인 은랑전과 두번째 수록단편인 메시지는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상화 소식을 듣고 소설을 읽으니 내용을 상상할 때 와호장룡이나 인터스텔라의 한장면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단편들을 소개해드릴게요.



첫번째는 표제작인 은랑전입니다.


앞선 단편소설들로 인해 당연히 은랑전도 일반적인 SF소설로 예상하고 읽는데 첫 문장부터가 반전입니다.


-8세기 중국, 당나라 조정은 이른바 '절도사'라는 군사 지휘관 겸 지방관에게 점점 더 의존했다.


첫 에피소드 일곱번의 생일에서 인류가 자신의 모든 것을 데이터화 된 가상현실에 이전하고 수백만년을 살아가는 먼 미래를 그리던 작가의 상상력은 은랑전에서 21세기도, 20세기도 아닌 8세기의 당나라로 돌아갑니다.


당나라 황제의 통치력이 넓은 중원을 아우르지 못해 지방의 군웅들이 할거하는 난세가 단편 은랑전의 배경입니다. 주인공 소녀는 여러 군웅 중의 한명인 절도사의 딸입니다. 그러다 지나가던 비구니에 의해 납치당해 그녀의 무공을 이어받게 됩니다. 고관대작의 딸이었던 만큼 겹겹의 호위를 받고 있었지만 비구니는 신묘막측한 수법으로 그녀를 빼돌리게 되고 소녀는 비구니의 탈을 쓴 살수에 의해 은랑이라는 이름을 받고 암살자로 키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첫 살행을 지시받게 된 은랑은 차마 살수를 펼치지 못하고 깊게 고뇌하게 됩니다.

저는 소설 은랑전의 영어 제목이 The hidden Girl이라 어둠속의 암살자를 표현한 줄 알았는데요, 사실은 이 소설의 모티브가 섭은랑전이라 그 곳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하네요.


2차원에서는 3차원을 인지할 수 없고 3차원에서는 4차원을 인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위차원에서의 공격을 받은 하위차원의 대상은 당하는 그 순간까지 인지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으며 막을 수도 없다.


차원에 대한 이해를 담은 심득을 깨우치게 되면 상위차원을 넘나들수 있게 되고 필연적으로 사매간의 대결은 현 차원을 벗어나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왜 이 소설이 환상문학이면서 SF소설인지 깨닫게 됩니다.




두번째로 소개드릴 에피소드는 역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될 예정인 '메시지'라는 소설입니다.

이번 단편의 주인공 제임스는 고고학자입니다. 수십만년 전 혹은 수천만년 전에 멸망한 외계문명의 흔적을 조사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어 보입니다. 이번에도 어느 멸망한 외계문명을 조사하던 제임스가 이혼한 전처의 시한부소식을 전해듣고 십여년간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자신의 딸을 맡아 키우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외계의 도시를 탐험하고 상대적시간팽창효과를 이용해 세달을 이틀로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력을 가진 먼 미래가 배경이지만 켄 리우의 SF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이 소설의 핵심이 아빠 제임스와 딸 매기의 이야기라는 데 있습니다.


멸망한 세계의 비밀이 밝혀지며 결국 제임스도 로라와 매기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매기 역시 제임스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는 영화화가 될 것이라고 해 재미있게 상상하며 볼 수 있었는데요. 제임스가 탐험하는 외계문명의 흔적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외계인들이 살던 것 처럼 묘사되어 비쥬얼적으로도 충분히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 외에도 중국계 미국인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을 다룬 단편 '맥스웰의 악마'와 단 다섯 페이지, 심지어 허사의 승려들에 의해 Cutting되어 실질적으로는 더 짧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던 단편 '잘라내기'까지.


켄 리우 작가의 말 대로 부담감없이 작가 스스로가 가장 즐겁게 쓴 이야기를 담았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읽은 후 남는 여운과 읽는 동안 다양한 생각할 거리들이 무수히 던져지는 단편소설집 은랑전.


SF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기발한 상상력의 재미를 제대로 보여준 은랑전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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