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면 죄뿐만 아니라 인간을 함께 미워하는 일이 의외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그들이 우리 눈앞에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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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을뿐더러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가벼우며, 시각이 협소하고 태도가 경박스럽고, 잘못된의견과 오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면 다른이들의 생각은 아무렇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거나 타인의 말을 내가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사람들의 말이 때로는 얼마나하찮은 것인지를 자신의 경험으로 깨닫게 되면 점점 타인의 생각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쓰레기 같은 머리를 지닌멍청이들이 가장 위대한 인물에 대해 험담하는 말을 들을 때는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그럴 때는 타인의 의견을 몹시 중시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지나친 존경을 표하는 것을 이해하게 될것이다. - P83

우리는 원체 본성이 너무나도 약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너무 많이 신경 쓰는 경향이있다. 그런데도 아주 조금만 생각해보면 타인의 견해 그 자체가 우리의 행복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우호적인 평가를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름의 허영심이 어느 정도 채워지는 것을 내심 기뻐하는 것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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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재기가 넘치는 머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표현할 것이지만, 반면에 아둔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머리는 그것을 그저 일상 세계에서 일어난 하나의 진부한 장면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 P32

이것이 바로 에펙테토스가 말하는 것이다.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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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중에 느리게 움직일 수 있다고? 그것은 시간에 대해 ‘갑‘인자의 특권 아니겠는가? ‘을‘은 레이스에서 맨 뒤에 처진 스케이트 선수처럼 시간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저 ‘을‘처럼 제대로 된 자리에 존재하지 못하는 자의 삶을 이렇게 기록한다. "자기‘를 잃어버리며 결단 내리지 않는 자는 거기에서 ‘자기의 시간을 잃는다.‘ 그러므로그에게 맞는 전형적인 말은 ‘시간이 없다‘이다."" 자기를 시간 속에서 잃어버린 자, 시간의 맷돌에서 갈리며 비지가 되는자는 늘 바쁘다며 허덕인다. 시간의 소유자가 아니므로 당연히 그에겐 시간이 없다. 시간 속에서 미아가 된 자는 시간을보내기 힘들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전전긍긍하듯 시간에게 고문당한다.
반면 시간을 잃지 않은 자, 오히려 시간을 돈다발처럼 소유한자, 바로 시간의 ‘갑‘은 원하는 만큼 느려도 상관없다. 오히려 시간이 예, 예 하면서 충실한 하인처럼 그와 발을 맞춘다.
시간을 소유한 자만이 원하는 속도로 시간의 페달을 밟으며풍경을 즐기듯 ‘느릴 수 있다. 그는 세상살이에 흡수되어 사라져버린 자가 아니라 원하는 만큼 천천히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자이다.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삶을 즐길 수있다는 것이 느림의 가치이다. - P248

한 사물의 목적인 용도를 실현하느냐의 관점에서 보았을때 파손된 사물이 구원받는 길은 ‘수선‘밖에 없다. 《메테오르》의 한 구절이다. "옛날에 모든 물건은 영구적으로 반듯하게견딜 수 있도록 장인에 의해 직접 만들어진 진품이었다. (...)그 진품은 유산의 일부분이었고 끝없이 수선을 받을 권리가
"19있었다." 이게 사물을 대하는 옛날 방식이다. 더 이상 수선할 수 없는 사물은 쓰레기가 되어 우리 곁에 쌓이도록 방치할수밖에 없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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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는 <유머>라는 글에서 말한다. "유머는 희귀하고도 귀중한 재질이다."
그런데 그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유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유머를 구사한다는 것은 곧 실언한다는 것이고 이를 빌미로 자신이 고발당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 한마디로 후회할 괜한 짓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머가 통용되지 않는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가 달성되었을 때, 그것은 냉혹한 법과 답답한 당위의 눈치를 보면서 겨우 안전한 길을 찾는 일만할 수 있는 겨울이 도래했다는 뜻이다. 요컨대 유머의 존재여부는 사회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 P191

유머는 이렇게 마비된 사회에 벌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머는 철학 속으로 파고든다. 우리는 고대 철학자 크리시포스XgionO의 정신에서 유머를 발견한다. 크리시포스는 문답을 주고받는 변증술로 명성을 얻었는데, 신들이 변증술을지녔다면 크리시포스의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평가를 사람들로부터 받았다. 그의 논변엔 유머가 깃들어 있다. 이런 식이다. ‘만일 네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너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너는 뿔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는 뿔을 가지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는 스스로 농담을 하고 너무 웃겨서 죽었다. 어느 당나귀가 그의 무화과를 입에 넣자, 주인 노파에게
"이제 포도주를 당나귀에게 먹여 무화과 열매를 삼키게 하시오"라고 말한 뒤 자신의 이 말이 너무 웃겨 죽었단다. 후에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 웃다 죽는 사건을 계승한다. "그들은 오히려 너무 웃어대다 죽고 만 것이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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