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의 총애를 받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는 따돌림을 당한 나는 이를테면 팔다 남은 물건이었다. 내 나이 일곱살에 기댈 곳이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 자신은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바야흐로 시작된 세기가 제시름을 비추고 있는 황량한 거울의 궁전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마련하겠다는 커다란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태어났다. 그러나 내가 그때까지 안 것이라고는 응접실의 개나 가질 만한 그런 허영심뿐이었다. 오만할 수밖에 없게 몰린 나는 ‘오만한 자‘
가 되고 말았다. 아무도 나의 존재를 진심에서 바라지 않았기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서 불가결한 존재라는 건방진 생각을스스로 품게 되었다. 그보다 더 교만한 생각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생각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사실인즉 내게는 다른 선택의여지가 없었다. 몰래 무임승차를 한 내가 기차 좌석에서 잠이들었다. 그러자 차장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차표를 보여 주시오!" 나는 차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운임을 내려고 해도 돈이 없었다. 나는 우선 내 잘못을 인정했다. 신분증명서는 집에 놓고 왔으며, 어떻게 개찰원의 눈을 속였는지는 이미 생각이 안 나지만 불법으로 차에 올라탄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는 차장의 권위에 대해서 시비를 걸기는커녕 그 직무를 존중한다고 소리 높이 외치고, 그의 어떠한 처분에도 따르겠다고 미리 선언했다.
이 자기 비하의 극점에서 내가 빠져나갈 길이라곤 오직 상황을 뒤집어 엎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대하고도 비밀스러운 이유 때문에 디종으로 가야만 하는데, 그 이유란 프랑스와 아마도 전 인류의 운명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새로운 관점에서 본다면, 열차의 모든 승객 중에서 나만큼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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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때에도 그랬다. 그래도 모든 것을 빌릴 수 있었으니까 나는그것이 괴롭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여전히 추상적인 존재였다.
이 세상의 재물은 그 소유자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반대로 내게는 그것이 내가 어떤 사람이 아닌가를 가리켜 보였다. 나의 존재는 단단하지도 한결같지도 않았다. 나는아버지가 한 일을 장차 계승할 자도 아니었고, 강철 생산에 필요한 자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나는 혼이 없는 존재였다. - P97

때때로 나는 지나가는 시간의 애무를 느낀다. 또 어떤 때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만시간이 지나가지 않는 것을 느낀다.
1분 1분이 부르르 떨며 밀어닥쳐서 나를 집어삼키고는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 썩었으면서도 아직 살아 있는 그 시간들을 쓸어 없애면, 좀 더 신선하지만 역시 똑같이 허망한 시간이 대신들어앉는다. 이 혐오감이 이른바 행복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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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 때는 위신과 긍지를 갖추고 있는 법이고 일하는 행복을 누려야 할 터이다. 그런데도 하루 여덟 시간을 일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그녀가 어째서 자기의 삶을 마치 불치의 병처럼 한탄하는 것일까? 내가그녀의 넋두리를 할아버지에게 고하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 P91

세상의 질서가 견딜 수 없는 무질서를 그 속에 숨기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 P92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어떤 꾸준한 고집이 내 속에 뿌리•박혔으리라. 아버지의 기분이 내 원리 원칙이 되고, 그의 무지가 내 지식이 되며, 그의 원한이 나의 오만으로, 그의 괴벽이나의 율법으로 변해서, 그는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리라.
그 존경스러운 입주자는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게 해 주었으리라. 그리고 그 자존심을 토대로 삼아 내삶의 권리를 일으켜 세웠으리라. 나를 만든 아버지가 내 장래를 결정해 놓았으리라. 나는 공과 대학생이 될 팔자를 타고나서 평생이 보장되었으리라. 그러나 장바티스트 사르트르는 비록 내 운명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 비밀을 가지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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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좋아하는지, 예술을 좋아하는 자신을 좋아하는지는 좀미묘하지만, 아빠는 오늘도 클래식을 들으며 운전하실 터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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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혼자 여행을 해낸 건 모든 걸 직접 준비해서 누린 경험이어서 더의미 있었다. 이전까지 엄마의 여행이란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으므로 "언젠가 상황이 맞으면 가야지" 같은 타인의 힘없는 의지가 따라붙었다. 그 의지에 묶여 있던 탓에, 타인도 엄마 스스로도 ‘혼자서는 여행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쉽게 규정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가 하는 여행 앞에는 ‘언젠가‘ 대신 ‘언제든‘이 붙는다. 가끔씩 엄마의 여행 사진이 도착한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조금 어색한 포즈를취한 채 웃는 사람, 그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확대해보며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웃는 그를 따라 나도 크게 웃는다. - P111

가족이란 너무 멀 때만큼이나 가까울 때도 서로를 다치게 한다. 어느 누구와의 관계보다 어려운 게 가족이라는 걸 엄마만의 방」을 통해 다시배웠다. 고단한 삶을 뒤로하고 훨훨 날아가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는 엄마처럼, 나 또한 몇 발 떨어진 곳에서 씩씩한 눈을 하고 내 삶을 살아내고 싶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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