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에 눈물이 솟구쳤다.
"실망시켜 드릴 일이요."
대현자는 다시 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앉아라, 아렌."
소년은 돌 화로 구석 자리에 와 앉았다.
"나는 너를 마법사나 전사나 어떤 완성된 존재로 착각하지않았다. 네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배를 몰 수 있다는 얘기를들으니 기쁘다만……. 네가 장차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이것만큼은 충분히 알고 있다. 너는 모레드와 세리아드의 후손이다."
아렌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말했다.
"그건 맞습니다, 대현자님. 하지만....."
대현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아렌은 자기 말을 끝맺어야 했다.
"하지만 저는 모레드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저일 뿐이에요."
"네 혈통에 자부심을 갖지 않느냐?"
"물론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것이 저를 왕자로 만들었으니까요. 그건 책무입니다.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할..…………."
대현자는 단 한 번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뜻이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미래를 부정하는 거야. 인간은 자기 운명을 만들지 못해 받아들이든가 거부할 뿐 - P54

이지. 마가목의 뿌리가 얕다면 훌륭한 결실을 볼 수 없겠지."
그 말에 아렌은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그의 진짜 이름 ‘레반넨‘은 마가목을 뜻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현자가 그의 이름을내뱉은 건 아니었다. 대현자는 말을 이었다.
"너의 뿌리는 깊다. 너는 힘을 지녔어. 네겐 공간이, 자라날공간이 필요해. 그래서 너에게 제안하는 거란다. 인라드의 집으로 가는 안전한 여행 대신 종점을 알 수 없는 위험한 항해를 말이다. 꼭 갈 필요는 없다. 선택은 너의 것이지. 하지만 난 네게선택할 거리를 주마. 나는 안전한 장소에 질렸거든. 나를 에워싼 지붕과 벽들에 진력이 난다."
그는 느닷없이 말을 뚝 그쳤다. 꿰뚫는 듯한 그 시선은 아렌에게 머물렀지만 제대로 아렌을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아렌은그 남자의 뿌리 깊은 초조감을 보고 두려워졌다. 그러나 두려움이 흥분에 날을 세웠다. 세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아렌은 대답했다.
"나의 주인님, 전 당신과 함께 가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마음도 머리도 경이감에 가득 차 아렌은 대학당을 나섰다. 나는 행복하다고 혼잣말을 해 보았지만 그 말은 들어맞는 것 같지않았다. 대현자가 자신을 힘 있다고 하고 운명의 사람이라고 일컬었으니 그런 찬사는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스스로 말해 보아도 자랑스러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왜일까? 세계 최강의 마법 - P55

"내일이면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될 텐데, 정말 그러고 싶지 않구나. 지금까지 자유로운 척해 왔는데...... 세상에 잘못된게 없는 것처럼, 내가 대현자가 아니며 마술하고는 인연도 없는것처럼 하고 있었지. 책임도 없고 특권도 없고 누구에게 어떤의무를 갖지도 않은 테메르 사람 매인 양......."
그는 말을 끊었다가 잠시 뒤에 계속했다.
"아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 섣부르게 택하지 말도록 해라. 어렸을 때 나는 존재하는 삶과 행위하는 삶 사이에서선택을 해야 했단다. 그러곤 송어가 파리를 물듯 덥석 행위의삶을 택했지. 그러나 사람이 한 일 하나하나, 그 한 동작 한동작이 그 사람을 그 행위에 묶고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에 묶어비린단다. 그리하여 계속 또 행동하도록 만드는 거다. 그러면지금처럼 행동과 행동 사이의 빈틈에 다다르기란 정말로 어려워지지 행동을 멈추고 그저 존재할 시간, 자신이 대체 누굴까를 궁금해할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거다."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 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에 빠질 수 있을까? 아렌은 그런 의심들은 미처 무엇을 이루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대하고 서늘한 어둠 속에서 배는 완만히 흔들렸다. 어둠 속에 새매의 목소리가 들렸다. - P66

확실함을 기대했던 곳에서 희망밖에 찾지 못한다는 것은 어딘가 삭막한 데가 있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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