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시간과 함께 발효되고썩어서, 가족에게도 공감받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되었음을본인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 어머니의 감정이 뒤틀렸다는 사실보다, 오히려 어둠이 깊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 P145
어머니라는 존재의 마음속 나침반은 이런 식으로 흔들리는 건가 - P149
이날 일어났던 사건이랄 수도 없는 작은 일들을 지금도내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가 언제까지고 옛날 그대로일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늙어 가는 모습을 눈으로직접 보면서도,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물쭈물대는 두 사람을 똑같이 우물쭈물거리며 멀리서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에는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조차 완전히 잊고 언제나 그렇듯 두 사람의 존재를 성가시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분들과는 관계없는 나의 일상 속으로 이내 돌아와 버렸다. 부모가 늙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죽는 것도 분명 어쩔 도리가 없으리라. 다만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줄곧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느껴졌다. - P163
"그런 나의 집착에 이끌려서 어머니는 그 후로 석 달을 더사셨다. 그 석달 새 유카리가 아기를 낳았다. 여자아이였다. 내가 아버지가 된 것을 아마도 어머니는 알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아기를 안아 주시는 것도 물론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석 달이 어머니에게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의미가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 의사나 간호사가 말했던 것처럼, 단지 고통을 조금 연장한 데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의사로서 어떤 판단을 내리셨을까. 남편으로서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리고 형이살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들 역시나의 판단을 비난했을까.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지금도 가끔씩 한다. - P166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서,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들도 아니게 되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나에게는새 딸이 태어났다. 솔직히 말하면 그랬다고 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대한 이런저런 후회나 상실감이 메워지는 따위의 일은 없었다. 잃은 것은 잃은 채로 그대로다. 다만 아이가 둘이 되니 차가 필요해져서 면허를 따고 차도 사게 되었다. 이런저런 일들은 이렇게 모양새와 상대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반복되는지도 모른다. 기쁘거나 슬프다는 식의 알기 쉬운 감정은 아니다. 알기 어려운 만큼, 인생 그 자체에 가까워진 듯한기분이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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