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충 박멸기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
이진하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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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설명충'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다. 흔히 뭔가에 대해 지식을 마구 뽐내는 사람, 어찌 보면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 <설명충 박멸기>는 이와 같이 약간은 네거티브한 현대 사회의 단면들을 엽편소설로 꾸려 낸 단편집이다.


총 2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든 이야기들을 이 한 바닥 내에 소개하긴 힘들 터이니 종합적인 감상을 내보자면 작가님이 참 현명하시고 작품이 신선하다, 라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각인된 감각은 현대 사회에서 갑에 위치한 집단이나 사람들이 소설 속에서 을로 전환되는 장면을 보며 맞이한 통쾌함이다.


특히 <정년퇴직을 위하여>라는 단편이 충격적이었다. 보다 심화된 저출생으로 대학들이 사라지고 내로라 하던 교수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시대. 정년만 채우면 남은 노년은 연금 받아 먹으며 편히 살 수 있는데 학생들이 졸업을 하려 하지 않으니(졸업 이후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없기에), 어떻게든 졸업을 시키고 학과를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실로 학생들은 '갑'의 위치가 되고 교수들은 '을'의 위치로 반전되어 교수가 학생들의 졸업 논문을 대신 써주고 대학원에 들이기 위해 학생이 입학을 함으로써 얻게 될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조건들을 걸어 주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어쩌다 보니 대학원에서 교수들이 알게 모르게 자행하는 핍박과 억압적인 처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ㅋㅋㅋ) 유독 공감 갔던 챕터다……(물론 좋은 교수님들이 훨 많겠지만).


위 단편과 같은 류의 조금은 치사스러운 현실의 모순을 꼬집는 이야기와, 인생의 소소한 애환을 밝혀 내는 에피소드,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회의 부조리함 등 각종 다채로운 테마들이 어떤 장을 펼쳐도 내 얘기인가 싶은 부분이 많아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세상을 꿈꾸면서도 하다못해 이 소설 속 이야기처럼 사회가 아예 틀어져 버리면 좋겠다라는 나쁜 희망도 품게 되고, 해학적이며 풍자적인 문장들이 내내 뇌리에 쏙쏙 박히니 소시민의 입장에서 여러모로 의미 있었던 일독이었다. 새해부터 좋은 작가님을 알게 되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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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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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목소리 저자라면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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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거두는 시간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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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표지를 넘겼는데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장을 덮었다.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으로, 다양한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랑의 양면성을 심도 깊게 고찰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다양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은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하다.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막상 대답을 해보려고 하면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순간 입이 닫혀 버리고 만다. 아가페든 에로스든 단편적으로는 나뉠 수 있겠으나 감정이 흐르는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니 도무지 뚜렷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 <그물을 거두는 시간>에서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탐구한다. 조금씩 변화하는 세상이라지만 아직 부서져야 할 편견은 많고, 편견을 깨부숴야 하는 주체는 항상 상처를 입는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은 아닐 수 있어도, 적어도 나 자신 만큼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있는 인생을 꿈꾸는 존재들이 저자의 문장을 타고 흘러내린다.


대필작가 윤지의 이모이자 유명 디자이너 오선임은 모든 걸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안고 있다. 이 모순은 한평생 그를 외롭게 하였고, 벗어나기 위해 자서전을 써 출판하고자 한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말이다. 윤지는 이 과정에서 이모의 진정한 삶을 직시하고 또한 본인의 인생도 되돌아 본다. 모르는 새 겹겹이 쌓인 오해는 앙금처럼 끈덕진 미움을 낳았고, 그를 해소하기 위해 또다른 감정들이 겹겹이 소모된다.


법적으로 얽히지 않았다고 하여 한순간에 함께 한 시간이 날아가는 경험, 얼마나 쓸쓸하고 허무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조건과 편견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게 욕심이라면 이 세상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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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셰프 NEON SIGN 10
서윤빈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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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우주, 특별한 음식점이 하나 있다. 나의 사연을 들려 주면 셰프가 걸맞은 음식을 만들어 준다는 컨셉의. 이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아내를 찾고 있다는 셰프 오멜레토 컴보의 애타는 노력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각자의 사연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되지 않은 채 사그라들기도 하고, 어떤 때엔 만나 본 적도 없는, 평생 현실에서 단 한번이라도 접점이 있을까 싶은 사람에게 가닿기도 한다. <유니버설 셰프>는 말마따나 '사연있는 사람들'의 모든 필연과 우연을 그려냈다.


오멜레토 컴보는 이유도 모른 채 아내를 잃는다. 분명 살아있단 건 아는데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아내는 작정하고 실종되어 버렸다. 컴보는 아내를 찾고자, 간판도 없고 허름함 그 자체인 우주선 식당을 연다. 취급하는 메뉴 이름은 '아무거나'. 적당한 바에서 칵테일 한두 잔 시키는 정도의 산 가격이 손님의 눈을 의심케 한다.


컴보는 화폐보다 손님의 이야기를 요구한다. 손님은 컴보의 의도를 수상쩍다며 의심하면서도 끝내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대가로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요리들이 주방에서 뚝딱뚝딱 맛있게 만들어진다. 고독한 손님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음식이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들에게 따끈한 음식으로 용기를 주는 컴보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별다른 수확 없이 아내의 행방을 좇는 그의 모습은 그저 고독하기만 하다. 과연 컴보는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순간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사랑과 상실이라는 키워드로, 음식과 삶의 조밀한 연결성을 보여 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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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꽃
로카고엔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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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예 호러 작가 로카 고엔의 연작 단편집, <죽음에 이르는 꽃>. 호러, 이야미스적인 요소도 있고, 싫어하지 않는 장르다. 출간 즉시 아마존 재팬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다고 하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서미터 평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꽤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성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곳엔 사랑도 증오도 공존한다. <죽음에 이르는 꽃>은 누군가의 악한 마음을 양분 삼아 활짝 피어난 어두운 산타클로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니콜라이(니코)'라는 아름다운 남성이 '바바' 가문을 시험하고 또 시험한다. 그다지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일가는 서로를 끈적하게 미워한다. 어느새 잔뜩 일그러져 버린 가족을 천사인지도 악마인지도 모를 존재가 마구 뒤흔든다. 누군가는 니코에게 축복을 받으며 다른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다.


신기하게도 이 모든 일화에, 인간 존재에 대한 존엄이라거나 도덕이라거나 상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히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어쩌면 신이란 이렇듯 추상적이며 즉흥적인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대체 바바 가문은 왜 이 남자에게 속절없이 홀려 버리고 말았는가? 수수께끼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종착지는...?


한 일족이 끝내 미쳐 버리는 과정을 묘사하고, 어쩐지 불쾌한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좀먹는 기분이며 상당히 공포스럽다. 심신이 피곤할 때 보면 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필력과 이야기 구성력을 가진 작가를 만난 듯하여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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