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멜론 슈거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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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마을 아이디아뜨에선 이름만 들어도 달콤한 워터멜론 슈거로 필요한 것을 지어내며 살아간다. 동화 속 풍경 같기도 하고 낙원의 한 장면 같기도 한 곳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이고 생경한 이야기…….


아이디아뜨는 평화롭다. 모든 원하는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워터멜론이 매일 다른 색깔로 자라고 송어가 가득한 강이 흐른다. 모자란 것 없이 풍족하고 따뜻한 마을이지만 아름답고 시적으로 표현된 이 소설 속에서 담담히 드러나는 무서운 광경이 독자를 혼란케 한다.


특히 호랑이가 주인공의 부모를 먹어치우는 장면은 너무 끔찍했다. 주인공은 당황해하면서도 담담하게 되려 호랑이들에게 산수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어딘가 결여되었나 싶었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가 대체로 이런 분위기다. 아이디아뜨에서 호랑이들은 마을의 평화를 위해 모두 제거되고 만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마거릿과 연인 관계가 된다. 마거릿은 어느날부터 '잊힌 작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집착을 보이기 시작한다. 때마침 인보일이라는 불한당 일당이 '잊힌 작품'을 이용해 질 나쁜 행동을 보이며 모두 속고 있는 것이라고, 호랑이들을 죽여선 안됐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주 잔혹한 소동을 일으키는데,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일말의 동정심 같은 것도 없이 냉정하게 사건을 수습하는 아이디아뜨 주민들의 반응이 무척 충격적이다.


평화롭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불순물을 제거해 버리는 아이디아뜨…… 과연 이곳이 진정한 낙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이 그토록 기피하는 '잊힌 작품'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게 어떤 것인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이디아뜨 마을에서 '잊힌 작품'은 영 어둡고 부정적인 것이다. 어쩌면 이상을 꾸리기 위해 현실을 도피하고자 한 주민들의 욕망을 드러내는, 그래서 피하고 싶은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토피아의 모순에 관한 이야기, 사랑과 인간사에 관한 이야기. 그러나 조각조각 떠오르는 요소들이 불분명한 수수께끼 투성이라 뚜렷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알쏭달쏭한 환상동화와 같은 문장과 전개. 아름답지만 슬프고 투명하지만 어두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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