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은, 언어를 통해 사고가 형성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은 그 언어에서 비롯된 공통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이 가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가 〈컨택트〉다.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루이스는 딸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알게 되었음에도 같은 남자와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미래를 알게 된다는 건 결과를 알면서도 사람을, 삶을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나의 미래가 기꺼이 알고 싶은 일들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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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 세계에서는 모든 죽음이 외부적 폭력의 작용으로 해석된다. 인간은 외부에서 덮쳐오는 이 치명적 폭력에 대항 폭력을 맞세움으로써 저항을 시도한다.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폭력에서 스스로를 지키고자하는 것이다.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살해한다. 죽임이 죽음을 막아준다. 더 강한 폭력을 휘두를수록, 더 많이 죽일수록, 그만큼 더불사의 존재에 가까워진 듯이 느끼게 된다. 폭력은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에 직면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죽음의 기술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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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의 수준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자기 착취가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스스로 불타버릴 때까지 (번아웃) 스스로를 착취한다. 이때 발생하는 자기공격성은 드물지 않게 자살의 폭력으로까지 치닫는다. 이로써 프로젝트는 성과주체가 자신에게겨냥하는 탄환 Projektil임이 드러난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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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융과 헤세도 동의할 만한 글귀를 썼다.
 
그러나 여기 있음이 대단한 것이기에, 그리고 겉보기에는 우리를
여기의 모든 것들이 필요로 하기에, 이 사라져가는 것들,
묘하게도 우리와 관계가 있는, 우리, 가장 쉽게 사라지는 존재와.
한 번,
그때마다, 오직 한 번. 한 번 그러고는 그만. 그리고 우리도 또한
한 번뿐. 되풀이는 결코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있었다는 것, 단 한 번이라도,
지상에 있었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
……
─ 그리고 이들, 사라짐으로써
살아가는 사물들은 이해한다, 그대가 그들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을,
덧없이,
그들은 우리, 가장 덧없는 존재들에 구원을 의탁한다.
그들은 원하노니, 우리가 그들을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온전히
─ 오, 무한히─  우리 자신으로 변용시키기를!  끝내 우리가 누구이든.
 대지여, 이것이 네가 원하는 바가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 안에서 되살아나기가? ─ 그대의 꿈이 아닌가,
한 번은 눈에 보이지 않기가?─ 대지여, 보이지 않음이여!
무엇이, 변형이 아니라면, 그대의 가장 긴박한 위탁이랴?1 - < 헤세와 융, 미구엘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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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지성을 믿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종국에는 자신이 어리석은 협잡꾼인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항상 누군가에게 이를 들킬 것만 같은 두려움 속에 살게 됩니다. - < 이것은 물이다, 데이비드포스터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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