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눈이 내리다
김보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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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이런 한국 SF 세계에 익숙하지 않다. 나에게 친숙한 단어가 모여 친숙한 위화감을 만들어내는 이 문장들이. 그래서 더욱더 멀리 하게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눈에 들어오는 이야기들. 이런건 어쩔 수 없는 모두의 마음속에 숨겨진 이야기니까. '비록 겉보기만 그럴듯하다 할지라도 (책에서 발췌)', 나는 항상 우리 둘 모두의 미래가 버거워 걱정만으로 종일을 지세울지라도, 나는 항상 너의 이야기가 너에게 따스함으로 맺어지기를 바래.
첫 단편부터 중간까지 오는 길, 나는 나를 다른 종의 눈에서, 다른 사람의 눈에서, 가장 친밀한 타인인 가족의 눈에서 본다. 나는 나를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지 길을 잃고 헤메다 어느순간 선택한다. 나의 가족이 나를 존재하게 하기에 나는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 다각도의 시각에서 전시되는 인간(나)은 너무나 혼란스럽지만 그 모든것이 자신임을 깨닫게된다.
첫 단편인 '고래눈이 내리다'에서는 숨쉬기 힘들게 가슴이 무거워졌다. 엎어져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누가 바위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그들의 모든 말 하나하나에 죄책감을, 그리고 무력감을 느꼈다. 우리는 모든 생물들에게 빚을 지고있고 나는 그 빚을 갚을 길이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그것조차 외면하는 파렴치한이 수없이 많으니까. 하긴, 자기조차 파괴하는 존재가 다른 존재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을까.
'껍데기뿐이라도 좋으니'에서 결국 눈물이 차올랐다. 아, 나는 수없이 노력해도 결국 나에게 각별한 존재들에 의해 살아가는구나. 이들을 걱정하고 이들을 위해 바램을 마음속으로 숨죽여 속삭이는 것이 나겠지.
곧 나의 동생이 먼 타국 땅으로 떠나간다. 영영 가는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알던 그 아이는 1년 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지. 잠시동안 나는 너의 이야기에서 사라지고 나는 너의 이야기를 읽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네 이야기의 모든 순간이 너의 눈빛만큼 찬란한 것으로 채워지길. 네가 피지 못한 꽃이라 생각한적 없지만 항상 찬란하게 피어있길. 또 그동안 나의 이야기도 분기점을 지나 결실을 맺길.
'느슨하게 동일한 그대'는 정말 내가 거울을 바라보는것만 같네. 사실 항상 두렵다. 나의 믿음은 나의 지식과 머리로는 끊어낼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데 묘한 위로가 된달까, 나같은 생각을 하는 인물을 창조할 수 있다는건 나는 어떠한 유형의 인간 범주에 들어가는, 결국엔 비슷한 사람을 찾을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달까.
이제 이야기는 절정이자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시작인 '고래눈이 내리다'는 다른 생물의 시각에서 우리를 관조했지만 '귀신숲이 내리다'는 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해가 되어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격렬했던 절정과는 다르게 '봄으로 가는 문'은 지독히도 담담한 끝을 맺는다. 이 이야기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잃어버린 가족이자 실제로 태어난 세계를 넘어 다른 세계에 정착해 살아온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우리 할아버지가 단순히 또 다른 세계의 문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기를. 그래서 내 기억 속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잘 계시기를. 그래도 내 할아버지는 나를 잊지 않았으면, 나도 언젠가는 함께 할 수 있을테니까, 우리 가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함께하기를.

각각의 단편이 개성을 갖고 숨을 쉬는 작품이어 좋았다. 그러면서도 갸냘프지만 단단한 연결을 갖고 있었다. 작가님이 허고싶은 말을 하고 있지만 그 생각의 범주가 지나치게 튀어나가지 않아서 한권의 책이 될 수 있게 된것 같다.
이런, 눈이 너무 퉁퉁 부어 반밖에 떠지지 않는군. 그러면 이번에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들만 다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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