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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두권짜린데, 상권 앞의 절반만 봐도 누가 범인인지 너무 강하게 암시를 준다.
도대체 놓칠래야 놓칠 수가 없다. 물론 열심히 반전이라든가 복선을 마련하려고
애는 썼는데, 그냥 훤히 들여다 보인다.
그래, 읽다 보면 주된 용의자가 두 명 정도 보인다.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다.
물론 현실에서라면 등장인물과 상관없이 막판에 아예 그늘속의 제3자가 툭 튀어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건 추리소설 세계고 그건 바른 추리소설 문법이 아니래니까 나온 사람 중에 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소재의 복잡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단순하기로 명성높은 댄 브라운
소설이다. 그래서 용의자 두 명을 저울질하며 가다보면, 나중에 또 한 명이 슬그머니 암시가
되긴 한다. 근데 세번째 용의자는 권력이 너무 약하다. 내통자 정도라면 몰라도 보스는
될 수가 없다 볼 수 있다. 아니, 그럼 일루미나티 첩자가 여기에도?! 라고 경악할 수도 있지만
알고 보니 그냥 단순인물이란다. 사실 용의자가 두 명이고 어쩌고 할 거도 없다. 한 명밖에
안 보인다. 영원한 법칙이지. 존경스럽고 완벽한 우리 편이 사실은 적이었대. 놀래라.
이렇게 단순한 것도 복선이라고 집어넣냐. 작가 배짱이 두둑하다.
그럼 용의자 두 명에서 왜 갑자기 한 명으로 확 줄이냐 하면, 암살자의 마지막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래, 이 암살자가 또 명물이다. 혼자서 그 연쇄살인을 시간 맞춰 다 해낸다.
운전, 인질운반, 살인, 혼자 다 하고 시간맞춰 장소이동해서 다시 운전, 인질운반, 살인이다.
이거 그 날 하루에만 네 번 되풀이한댄다. 유능하다고 치고, 로마에서 이게 가능한 일인가 몰라.
그러면서 또 각본에도 없었을 주인공 혼란시키기 작전까지 충실히 하고 죽는다. 각본에
절대 없었을 거다. 암살자가 자기가 죽는다고 치고 살아남은 주인공들을 오해시키려는
뜻으로 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말이니. 마지막 한 마디까지 떠벌대고 감으로써 용의자를
압축시켜 놓았다. 즉, 암살자가 암말 않고 죽었으면 후반부 극적인 전개는 없었을 거다.
이거 소설로 보는 사람은 그냥 알 수 밖에 없다. 이 후반부 전개가 박진감 넘친다고 볼
사람은 세상에 댄 브라운 혼잘 거다. 독자는 후반전개가 지루해죽을 지경이다.
그래 영화라면 속아넘어갈지도. 근데 영화라면 아마 액션만 살고 제일 재미있는
조각상 4개 찾기 수수께끼는 흐지부지될 거다. 이 책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실존하는 조각상 4개를 연결해서 이야기를 부여하고 그 음모론의 중심을 역시
로마에 실존하는 한 군데에 맞춘 것이다. 비록 그 장소가 이렇게 거쳐오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도 이미 훌륭한 음모론 본거지지만 말이다. 로마에서 교황청과 이 곳의
비밀을 못 들어본 관광객이 있을라고. 댄 브라운 소설이 늘 이런 식이다.
자잘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거쳐 목적지에 도착해보면 이거 뭐 이렇게 복잡하게 둘러올
필요가 있었나 싶어 사람 벙 찌는 거. 반물질 은닉장소도 이하동문이다. 말장난일 수도
있지. 반석 위에 안전하게 놓인 반물질.
하기야 암살자가 로마의 교통정체에서도 그렇게 효율적인 거와 대조되게 주인공 진영이
자꾸 어긋나는 것도 참 재밌긴 하다. 아주 사소한 입장차, 오해로 주인공 진영은 막강한
인력과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질 못한다. 우연하게 발생한 관료주의적 오해나 의심이
없이 집중했다면 암살자가 혼자 이렇게 날뛰진 못한다.
그리고 암살자에 이어 밝혀지는 보스도 단독범행이었다?! 교황청을 비롯해서 모든 관료조직을
우습게 보지 마라, 댄 브라운. 벽에도 귀가 있는 게 조직이다. 상층부 주위엔 늘 엿듣는
하인들이 도열하기 마련인데 이런 줄거리라니.
암살자는 요즘 미국에서 악역으로 아주 부담없을 아랍인 단독범행이고, 보스는 종교계의
반발을 사지 않으려면 단독범행이어야 했겠지. 그래야 부담없이 책 많이 팔아먹으니까.
정말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4원소 조각을 실존 조각들하고 연계해서 이야기 만든 거,
그 과정에서 베르니니를 한 번 멋지게 부각시킨 점이다.
그런데 일루미나티도 그냥 암것 아니었대, 단독범행이었대, 로 끝나면 참 허탈하다.
글구 제목은 이거랜다. 천사와 악마.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이건 어때? 헛소동. 딱 들어맞는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