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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ㅣ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주말 저녁 가벼운 운동 삼아 서점에 들렀다가 이 책을 봤다.
번역본 나온 지는 몇 달이나 지났는데, 까맣게 몰랐더랬다.
한겨레신문, 스포츠한국, 서울신문, 이렇게 세 신문만 짤막하게나마 이 책 나온 거
알렸었더라. 2004년 일년 동안 각 신문들이 화려하게 선전해 준 번역소설들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원작자, 말로 두 번 설명할 필요 없이 정말 멋진 사람이다. SF를 무슨 매뉴얼 아니면
늙은 히피가 마약먹고 동양신화 섞어쓴 길기도 긴 잡문이라는 두 가지 부류만 줄창나게
접해본 사람들에게 샘물처럼 시원하고 깊이있는 일상의 감동을 준다. 특히 표제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거만 보고 사도 두고두고 후회없다.
단편집인데, 그 짧은 단편안에 각 분야 전문가가 보아도 흠잡을 구석이 없을 뿐더러
기술용어 대충 넘어가며 사건 줄거리만 따라가려는 어린 독자들에게도 에밀레종처럼
깊게 울리는 감동을 준다. 기존의 학문분야들을 정확하고 성실하게 끌어다쓰면서
독자가 처음 접하는 건 분명히 아닌 소재를 꼼꼼히 처음부터 성실하게 일상으로
가져오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약간 아쉬움이 있다면, 원작자 테드 창은(사실 원작자 이름표기 때문에 책 검색이
더 힘들었다. 중국계 미국인인 원작자를 테드 치앵이라고 원래 발음하는데....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CHIANG를 창이라고는 발음하지 않는다;;;) 스스로 완벽하게
목소리를 조절해서 여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이야기도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번역자는 생각이 보통 한국남자인지 너무 점잖다고 할까....
표제작은, 어머니가 아직 수태되지도 않은 미래의 딸에게 어머니 자신이 최근까지
맡았던 외계인과의 의사소통프로젝트 경험 이야기, 그 과정에서 남편과의 만남
이야기, 그 프로젝트 중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면서 외계인의 사고방식까지 깊이
받아들이면서 딸과 자신의 미래의 일생을 과거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레 투시할
수 있게 된 이야기, 그래서 딸을 키우면서 겪게 될 소소한 행복과 이르게 닥쳐올
딸의 죽음을 과거의 모든 추억들처럼 자신의 것으로 자연스레 끌어안게 된 이야기,
그래서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듯이 모든 미래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성실하고
상냥하게, 어머니가 아기를 안듯이 포용하며 관조하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여기서 제목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처럼 거창한 거 보다야 '네 삶의 이야기' 정도로
친근한 게 좋을텐데. 또 신혼의 신부가 미래에 태어날 딸에게, 미래의 남편과의 파경 후
남편이 데리고 살 젊은 여자를 지칭하면서 '이름이 기억 안 나는 그 여자'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다. 이 부분은 여자로서 속물근성을 드러내어 원문의 표현에 더 가깝게
'뭐라나 하는 그 여자' 정도로 경멸기를 드러내어도 좋은데. 어머니가 딸에게 늘 성모처럼
행동하는 건 남자들이 끈질기게 품고 있는 컴플렉스다.
어쨌든 훌륭한 이야기다. 작가의 논리를 구성하는 깔끔한 전문용어들이 낯설어도 당황할
필요없다. 어차피 남의 전문분야를 처음 접하면 용어로 당황한다. 단어를 외우려 당황하질
말고 넘어가라. 대충 줄거리만 잡으면 된다. 세상에서 제일 딱한 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으면서 난무하는 종교적 단어며 주제를 처음 읽는 그 순간부터 다
정리하려고 애쓰는 동료 독자들이었다. 단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건 작가가 할 일이다.
아니면 이 이야기에서처럼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려는 언어학자나. 독자는 작가가 구성한
사건을 따라가며 즐기면 된다. 그러도록 책을 구성하는 게 작가의 역할이다. 즉, 작가는
테드 창처럼 용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동시에 사건 줄거리를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형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간신히 한글만 읽을 수 있는 어린 독자나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우리의
많은 가족들같은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주도록 말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책은 문학이 아니라
매뉴얼이나 늙은 히피가 마약먹고 갈겨쓴 잡문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