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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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물 형태의 가제본을 받아본 건 처음이다.

가제본이라도 통상 책 형태로 받아본 경우가 많은데,

마치 논문을 보듯이 이리저리 돌려가며 책을 본다.

역시 이세욱 번역가님의 글을 잘 읽힌다.

'개미'에서 만났던 그의 번역은 술술 읽힌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다르다.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이런 주제의 글들이 읽기 불편해서 잘 읽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작가의 접근이 너무 공감이 되는 부분이라

고개 끄덕이며 읽었다.

-

일이 벌어지고 나면,

일단 그런 일이 시작되고 나면,

일단 사람이 그런 일을 행동으로 옮기고 나면,

그땐 너무 늦은 것이고,

일은 이미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든 중단시켜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절실하게 깨닫는다.

막을 방도도 전혀 없고

도와줄 사람도 하나 없다.

벌어진 일을 누구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래서 그 일은 계속되고, 일을 또 벌이고,

다시 또 벌인다.

-

흔히 신문이나 뉴스에서 이런 기사를 접하면

너무나 단순하고 감각적으로 보도를 해서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는 명확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하다.

아동 폭력이라는 사실은,

아동학대와 성적인 공격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범죄자들 대다수는 자기네가 겪은 일을 용서받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작가는 어떤 객관적인 진실에 부합하는 초상화를 그리려고 애를 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건 불가능하다.

바로 그 사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무런 이유없이 그런 사태에 얽혀든 것이다.

가해자는 다른 존재를 파괴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계속 그 짓을 벌인다.

지옥같은 악순환에 빠져있다.

사실 법정에서의 다툼은 무의미하다.

입증 절차나 증언은 피해자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해자는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를 했음에도

살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적은 형량에 그친다.

존재의 근본을 침해하는 행위임에도.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인 것이다.

설령 우리가 그 역경을 벗어난다고 해도,

진정으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없고

우리를 그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 놓은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유롭고 억압받지 않은 자아는 없다

폭력이 끝나고 평온을 되찾을 그런 균형은 없다.

죽지않고 살아남은 내가 유령같은 존재가 되어

오늘날까지 버틸 수 있었으리라.

버틸 수 없었던 여자는 가야할 곳으로 떠나갔고,

다른 여자, 즉 살아남기를 바랐던 여자가 바로 나다.

절대적인 악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고

살아남은 사람이 왜 죄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으며

회복탄력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겪은 사람이

보통 사람처럼 되는 것은 그다지 섹시한 결말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는 오로지 신뢰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나이에,

강간당했고, 모욕당했고, 배신당했다.

세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여 있는 세계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두가 거의 같은 어둠이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악을 무시할 수 없다.

악은 여기저기 도처에 있다.

악에서 도망치면 칠수록 악이 더 빨리 우리를 잡으러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

가장자리에 버티며 살 수는 있다.

문턱에 머무는 법을 배우라.

그렇게 도전하라.

운명의 줄위로 곡예사처럼 걸어라

비틀거릴 수는 있지만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떨어지지 마라

떨어지지 마라

떨어지지 마라

책이 끝났다. - 이렇게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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