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가 엉망인 건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야. 모두가 그럴듯한 사연과 변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는 더럽고 역겹지만 자신이 발 디딘 땅을 결국 떠나지 못한다. 돈도 없고 먹고살 길도 없는 것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가 이 역겨운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 역겨움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여거움을 견디는 것이 저 황량한 세계에 홀로 던져지는 두려움을 견디는 것보다, 두려움의 크기만큼 넓고 깊게 번지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책방에 이렇게 많은 책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칸칸이 꽂혀 있던 이 많은 생각들, 이야기들, 연구들, 한 번도 보지 못한 숱한 저자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그들이 나와는 너무도 멀리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 보는 생각이었다. 그 전까진 그들과 가깝다고 생각했다. 비누나 수건처럼,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곳에.
787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희비극으로 끝난다.788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희극으로 끝난다.791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암호 작업으로 끝난다.795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공포 영화처럼 끝난다.798 희극으로 시작된 것은 개선 행진처럼 끝난다. 그렇지 않은가?802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미스터리로 끝난다.805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허공에 대고 하는 위령 기도로 끝난다.811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희극적인 독백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웃지 않는다.
삶은 살아야 한다. 그저 그뿐이다. 그 어느 날, 바 라 말라 센다에서 나올 때 마주친 취객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문학은 전혀 쓸모없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