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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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다시 강요의 문제로 돌아오자면, "진탕 마시고 속엣말 다 편하게 털어놓자" "취한 김에 비밀 하나씩만 이야기해봐" 같은, 조직된 ‘허심탄회주의‘를 강요하는 술자리도 질색이다. 나는 아직 준비도 안 됐고, 딱히 당신과 그럴 생각이 없으며, 그럴 만한 관계도 아닌데 따옴표를 확 열고 들어오면 "제가 털어놓을 속엣말은요…. 당장 집에 가고 싶어요" 말고는 할 말이 없어진다. 백지 위에서 쓱쓱쓱쓱 같이 뒹굴며 같이 뭉툭해지며 같이 허술해져가며 마음이 열리고 말이 열리는 건 일부러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상태이다.
비슷한 기질을 갖고 있고 비슷한 상태가 될 수 있는 나의 오랜 술친구들과 미래의 술친구들과 오래오래 술 마시면서 살고 싶다. 너무 사소해서, 너무 유치해서, 너무 쿨하지 못해서, 너무 쑥스러워서, 혹시 기분 상할까 봐, 관계가 틀어질까봐, 어색해질까 봐 같은 계산 다 던져버리고 상대를 믿고 나를 믿고 술과 함께 한 발 더. 그러다 보면 말이 따로 필요 없는 순간도 생긴다. 그저 술잔 한 번 부딪히는 것으로, 말없이 술을 따라주는 것으로 전해지는 마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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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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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의 꽤 많은 부분에서 ‘가늘고 길게‘의 정신을 따르는 편이지만, ‘친구‘는 그 부분에 해당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늘고 길게 가는 관계는 ‘지인‘이다. 가느다랄 거라면 뭣 하러 친구가 되며, 가느다란 친구 관계가 굳이 길어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런 경우 상대도 나도 너무 사소해서, 너무 유치해서, 너무 쿨하지 못해서, 너무 쑥쓰러워서, 혹시 기분 상할까 봐, 관계가 틀어질까 봐, 어색해질까 봐 등등의이유로 차마 맨 정신으로 할 수 없어 속에 담아두는 말들이쌓여갔고, 쌓이는 말들 사이의 여백을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치않는) 추측으로 메워가다가 어느샌가 전혀 다른 곳으로 서로를 데려갔다. 분명 10년 가까이 알았는데 서로에 관해 잘 안다고 ‘추측‘ 했지만 지나고 보면 잘 몰랐다. 지나고 보면 상대도 나도 적정선 안에서 ‘나이스‘ 했다. 지나고 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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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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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맥이라도 누군가 말아서 마시기를 강요하면 폭탄주지만,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누군가 말아주면 칵테일이 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술들이 어떤 사람에게 폭탄이, 벌칙이나 고역이 되는 것은 술꾼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다.
무엇보다 만취 상태로 곧바로 건너뛰기에는, 술동무와 함께 서서히 취기에 젖어드는 과정이 주는 매력을 무시할 수 없다. 때로는 이게 내가 술을 좋아하는 이유의 전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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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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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인데 밖에서 혼자 술 마시는 걸 더 꺼리게 되다니 너무 슬프지 않아요?" 작년 겨울 이삼십대 여성들로 이루어진 세미나 뒤풀이에서 누가 분통을 터뜨리자 누가 "그러다 맞거나 죽으면 더 슬퍼요"라고 했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스쳐 갔던 못마땅한 시선들을 떠올려봤다. 그중에는 괘씸함을 넘어선 적의도 분명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꼴 보기 싫어했다. 꼴 보기 싫은 마음이 문명의 선을 조금 넘으면 꼴을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될지 모른다. 게다가 여자 ‘혼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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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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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니‘ 할 수 있던 상수가 ‘혹시 모르니까‘ 의 변수로서 재계산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밖혼술하기에 비교적 안전한 곳을 찾게 되었고, 밥집이나 순댓국집 같은곳에서의 밖혼술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대낮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도 없는 공중화장실에 여간해서는 들어가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 혼자 사업장을 운영하던 친구들이 믿을 만한 남자 아르바이트생들을 구하게 되었을때부터, 혼자 택시를 타고 가는 날에는 친구들끼리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를 예전보다 훨씬 자주 주고받게 되었을 때부터, 남자와 시비가 붙으면 여간해서는 지지 않았던 친구들이 참고 져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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