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의 꽤 많은 부분에서 ‘가늘고 길게‘의 정신을 따르는 편이지만, ‘친구‘는 그 부분에 해당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늘고 길게 가는 관계는 ‘지인‘이다. 가느다랄 거라면 뭣 하러 친구가 되며, 가느다란 친구 관계가 굳이 길어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런 경우 상대도 나도 너무 사소해서, 너무 유치해서, 너무 쿨하지 못해서, 너무 쑥쓰러워서, 혹시 기분 상할까 봐, 관계가 틀어질까 봐, 어색해질까 봐 등등의이유로 차마 맨 정신으로 할 수 없어 속에 담아두는 말들이쌓여갔고, 쌓이는 말들 사이의 여백을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치않는) 추측으로 메워가다가 어느샌가 전혀 다른 곳으로 서로를 데려갔다. 분명 10년 가까이 알았는데 서로에 관해 잘 안다고 ‘추측‘ 했지만 지나고 보면 잘 몰랐다. 지나고 보면 상대도 나도 적정선 안에서 ‘나이스‘ 했다. 지나고 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