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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언어 - 삶과 죽음의 사회사, 2024 아우구스트 상 수상작
크리스티안 뤼크 지음, 김아영 옮김 / 북라이프 / 2024년 11월
평점 :
이 리뷰는 해당도서를 해당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처음 책을 받아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는나..
자살의 언어..
삶과 죽음..
나도 나이가 마흔이 넘으니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그냥 내 삶의 한 부분이 된 죽음...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죽음에 대한 나의 고찰은 순간 순간 떠오르고..
처음엔 힘들었다가.. 지금은..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나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엄마를 떠나 보낼 마음의 준비를 했을까?
우리는 사실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 온 것 같다.
나도 사실 그랬다. 특히나 어릴적에는 더더욱 그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나서는 죽음에 대해..
공포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있다.
내가 이상한 걸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연스러운 죽음과 달리..
자신의 선택에 의한 죽음.. 자살은.. 우리 사회에 많은 메세지를 주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자주 유명 연예인, 정치인 등... 그들의 자살을 흔하게 접한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았던 연예인의 자살은 일반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이였을까?
일반인이 가지지 못하는 무한의 사랑과 그리고 재력..
일반인들의 자살을 살펴보면 그들의 수많은 이유 중.. 생활고가 많았는데..
일반인이 보기엔.. 이쁘고 잘났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럼에도..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었을까?
자살의 언어 지은이는 스웨덴의 공립의과대학인 카롤린스카대학교의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이다.
솔직히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많이 어렵고 어려웠다.
그리고 자살에 대한생각과 자살이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어떤 측면에서는 어쩔수없는 선택이다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그럼에도 자살에 대해 동조할 수 없고 자살하는 이들을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어렵고 참 어려운 것 같다.
내 주변에 자살을 품고 있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를 설득할 수 있을까.
우리는 힘들때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힘들 때 죽고 싶다라는 말을 종종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말은 진짜 죽고 싶다는 말은 아니였던 것 같다.
그만큼 내가 힘들다고 나를 좀 봐달라고 말로 내 뱉었던 것 같다.
죽음에 이르게끔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기 위해서는 살고자 하는 본능을 꺾어야 한다.
이 글귀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고등학교 때 너무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서 혹은 부모님의 꾸중에 반항을 하느라..
칼을 손목에 가져다 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칼로 긋지를 못했다. 너무 무서워서.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이런 살고자 하는 본능... 자살하는 이들은 이것들을 어떻게 꺾은 것일까.
그만큼 절박했던 무언가가 있던 것일까.
그건 무엇일까.
앞페이지에서 읽었던 부분 중에..
자살 시도 생존자를 인터뷰한 연구에 따르면 약 3분의 1은 자살 관념을 오래 겪지 않았으며
대체로 자살 시도 한 시간 전에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이 든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고 한다.
오랜 생각 끝에 결단을 내리고 자살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분들도 많다고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고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안락사..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여러나라에서는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다.
나는 책 속의 나탈리가 안락사를 간절히 원하고 그리고 안락사를 위해 신청을 하면서..
곧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자 나탈리는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안락사라는 것이 사실 어떤 이들에게는 간절할 수 있으나..
결국.. 자살을 동조하고 그들이 그들의 삶을 놓는 것을 명분화 시키는 법안이라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탈리처럼.. 다시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와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이가 분명 있을텐데..
죽음 앞에 후회하는 이들의 여러 사연들을 읽으며.. 또 가슴이 먹먹했다.
케빈은 시커먼 물을 향해 몸을 내던짐과 동시에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죽기 싫어! 하느님, 맙소사. 절 구해주세요!'
자살을 꿈꾸고 자살을 행하는 이들은 사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필요하다며..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살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언어로 나를 구해달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그 자살의 언어를 나는 과연 잘 알아 듣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만약 내 옆의 내가 사랑하는 이가..
자살의 언어로 나에게 말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그를 그의 삶으로 되돌아 올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을까.
어찌보면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살이라는 것은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기도하다.
자살의 언어... 사실 살고 싶다고 말하는 언어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