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
그는 부모님과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훌륭한 가장이자 유능한 영업사원에서 하루아침에 쓸모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자신의 변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 그는 늦잠을 잔 자신을 책망하며 틀어진 그날의 일과를 수습할 대안을 열심히 생각해 내는 한편,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놀랄 가족들을 염려하며 모습을 숨긴다.
그러나, 그의 결근을 추궁하러 온 회사의 지배인과 가족들 앞에 결국 충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놀라 쓰러지는 어머니와, 허둥지둥 도망 가는 지배인, 그리고 마치 벌레를 구석으로 몰 듯 쿵쿵 발을 구르며 지팡이를 휘두르는 아버지로부터 몸을 피해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 온 그는 그날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시작한다. 가족 중 단 한 명. 그의 여동생만이 방에 들어와 그의 식사를 챙기고 안부를 확인하곤 하였다.
바로 어제. 나는 갑작스럽게 일을 쉬게 되었다. 1년간의 근로계약 종료를 앞두고 재계약에서 밀려난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남은 연차를 소진해야하므로 당장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지 말라는 담당자의 말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복지교사인지라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생이별을 하게 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한편으로 밀려드는 불안감. 현대 사회에서 어느 날 갑자기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사회 혹은 가정의 구성원으로서의 효용성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뜻밖에 맞이한 휴일 날,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잠자의 변신은 현대인의 삶에 비추어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숨쉴틈 없이 빡빡하게 자신의 삶을 억누르는 현실로부터의 해방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 인간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현실 그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방이라고 하기에 그의 변신은 너무 외롭고 초라하다. 다정하게 그의 식사를 챙기던 여동생 그레테 마저도 차차 무신경해졌으며, 가족들은 오히려 그가 없는 생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갔다.
여동생은 무엇을 주면 그레고르가 특히 기뻐할지 이젠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침과 점심때 가게로 달려가기 전에 황급히 아무 음식이나 되는대로 그레고르의 방에 발로 툭 밀어넣었다가 저녁때면 그냥 비로 한번 휙 쓸어냈다. 그가 음식을 맛이라도 보았는지 아예 손도 안 댔는지-손도 안 댈 대가 허다했다-는 신경도쓰지 않았다. -p.95
마흔 살. 뒤늦은 나이에 글을 써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 실직은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다. 아껴가며 생활하면 가계에 크게 지장이 없을 듯도 하다. 하지만, 잠자와 같이 이제 쓸모가 없어진 내가 주위로부터 잊혀지게 되지는 않을까? 성가신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한 나 자신이 왠지 측은하게 느껴진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스스로 수치로, 효용성으로 평가받으며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으며 때론 생산성으로 따질 수 없는 '바보 같은 짓'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고 가치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