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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들은 대개 각자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연일까.
나는 이 책 '소설가의 일'을 읽고 이제 그들을 해피앤딩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들은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끄집어내어 도전에 실패를 거듭한 결과 목표에 이른 것이다. 소설얘기같은 데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들어보시라.
소설 작법에 관한 머리 아프고 복잡한 다른 책들관 달리 이 책은 일상의 비유(ex:자전거 탈취, 각국의 화장실 표시등)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중간 중간 가벼운 유머까지 섞어 지루해질 틈 없이 읽을 수 있다.
보통은, 이야기를 쓰려고 할 때 무엇부터 써야 할 지 막막할 때가 있다. 캐릭터와 주변인물들을 상정하고 이야기에 불은 어떻게 지필지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키기 일쑤이다. 그럴 땐 일단 '토고'(오그라드는 초고;)를 쓰라. 그리고 끊임없이 퇴고를 반복하라. 생각을 하려 들지 말고 문장을 만들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순서란다. 흔히들 하는 순서의 착각이라고. 어쨌든 머릿 속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아이디어는 글로써 배출되지 않는 이상 소설도 뭣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 다음에 할 일이 구체적인 디테일을 붙이고 단어와 문장을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다듬는 작업과, 주인공의 욕망과 앞길을 저지하는 방해꾼을 만들고 그런 좌절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시도하고 도전하는 이야기(생고생)가 만들어지는, 우리네 인생과 같은 소설이 완성된다는 간단하고도 이해가 쏙쏙 되는 가르침이다.
우리가 영화나 소설을 볼 때 주인공이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장소에 굳이 간다거나 넓은 오지랖을 발휘해서 엄한 일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건 사건이 벌어지는 계기가 되거나 이 책에서 말하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리는 효과를 주는 일종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글 쓰는 이는 이런 이야기 속 주인공을 좌절시키지 않고 7전 8기 오뚜기(?)로 만들어 보는 독자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안도하며 때론 공감하는 등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마술사인 것이다.
독자들은 똑똑하다. 이야기에 조금의 빈틈이라도 허락하지 않고 개연성이나 핍진성이 결여된 소설은 외면한다. 너무 뻔해도 실망하고 표현이 진부하고 어설퍼도 흥미를 잃는다. 최근 유행따라 번지는 막장드라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요즘 독자들은 다소 가독성이 떨어지더라도 일명 '빈도수염력사전'의 뒷페이지를 활용한 문장 즉,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진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자주 읽지 않아 그런 고급표현을 보면 어렵다는 생각 뿐이지만 문학을 자주 접해온 수준 있는 독자들이라면 작가가 '필력이 좋다'라든지 '문체가 쩐다'라는 등의 반응이 나올 것이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전지적 작가가 될 때까지 느리게 쓰기'였다. 숙련된 이야기'꾼'이라면 소설 바깥에서 마치 목각인형을 조종하듯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꿰뚫어 보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모든 일의 인과를 예측하는 시점에서 글을 써야 한다. 또한 결론과 과정을 대략 예상해보는 머리 좋은 독자들을 보기 좋게 비웃어주며 생각지 못한 반전 등으로 이른 바 독자를 가지고 놀아줘야 제 맛이다.
소설가는 글만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제가 무한한 만큼 일상의 이야기는 물론 문화와 정치,의료,법 등등의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므로 많은 책을 읽고 경험하고 여행하며 감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론 힘든 품을 파는 것도 감수해야만 한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 한 번에 무언가를 이룬 것보다 온갖 평지풍파를 다 겪고 그 길을 지나온 사람에게 더 경외심이 드는 건 그가 지나온 여정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리라. 현대인들은 언젠가부터 이러한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역전 드라마 같은 일이 자신에겐 없을 거라고 일찌기 단정짓고 살게 됐다. 꿈을 접고 욕망만 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는 때론 소설가처럼 인생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오늘 왜 이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왜 하필이면 나인지 객관성을 띠고 지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를 주인공로 두고 소설을 쓰는 누군가가(혹자는 신이라고도 하지만) 더 큰 일을 예비해 오늘 내게 이런 시련을 안겨주는 것일지 누가 아는가. 소설은 인생과 같다. 그리고 소설가는 이런 인생같은 소설을 쓰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