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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19년동안 총 27분의 왕이 즉위한 가운데, 가장 위대한 두 군주를 꼽으라면 단연코 세종(15세기)과 정조(18세기)일 것이다. 세종은 집현전을 두어 한글 창제를 통한 애민 정신을, 정조는 규장각을 두어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진흥시켰을 뿐만 아니라, 백성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개혁 정치를 실현하였다.
<반차도>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과 현륭원에 행차한 8일간의 대규모 행렬을 기록한 것으로, 단원 김홍도를 비롯 당대 일류 화원의 뛰어난 솜씨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청계천에 188미터에 이르는 도자기 벽화로도 재현되어 있다.

정조에게 화성은 무엇이었을까?
정조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시기와 장소를 화성에서 찾았다.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고, 화성을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군사·행정·상업·농업을 아우르는 계획도시로 건설하고자 하였다.
한마디로 화성은 정조의 효심과 정치적 이상이 결합된 공간이었다. 더군다나 정조는 화성 축성 공사비용을 국가 재정에서 지출하지 않고, 왕실의 사재인 ‘내탕금’에서 충당했으며, 백성의 세금을 축내지 않으려는 애민정신을 보여주었다.

1795년 윤2월 12일, 서울을 떠난 지 나흘째이자 화성에서의 둘째 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행차했을 때의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혜경궁이 장내로 들어서자 비통함이 절도를 넘어 울음소리가 장 밖까지 들려왔으며, 정조는 정리소에 명하여 삼령차를 어머니께 갖다드렸으나 혜경궁은 이를 물리쳤다. 뒤주에 갇혀 28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남편이 누워 있으니, 아마도 혜경궁 홍씨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분 모두 173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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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1800년 6월 28일, 49세를 일기로 승하하셨으며, 지병(피부병)으로 인한 건강 악화가 사인으로 전해진다. 1,800여 명이 등장하여 18세기 조선의 뛰어난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반차도>.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문화적 수준과 정조 시대의 개혁 정신을 엿볼 수 있으며,
영문 해설이 함께 실려 있어 외국인들에게 선물하기에도 적합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함>
저자: 한영우
출판사: 효형출판 @hyohyung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