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 - 케인스에서 크루그먼까지 현대 경제학자 14명의 결정적 순간
히가시타니 사토시 지음, 신현호 옮김 / 부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장기 불황으로 접어든 이 시대에 해결사의 역할로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학문이 경제학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다양한 경제 관련 정보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비전공자가 경제 정보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 경제학 교과서를 펴는 것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경제학은 수식과 그래프로 가득찬(것처럼 보이는) 학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을 위한 좋은 ...경제학 소개 서적은 경제학 교과서와는 별개의 의미에서 중요하다.



훌륭한 경제 관련 서적을 여러편 출간해왔던 부키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새로운 경제학 개설서가 나왔다. 이 분야에서 기존에 널리 알려진 책으로는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 이나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아이디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 수식등을 사용하지 않고도 경제 이론에 대한 깊이있는 해설을 전해주고, 저자들의 필력을 바탕으로 읽는 재미 또한 훌륭한 서적으로도 정평이 있다. 그렇다면, 이 일본 학자의 새 책은 기존의 개설서들과 비교하여 어떤 차별성을 갖기에 새로이 집어들어야 할까?



애덤 스미스로 시작하거나, 자본주의 태동기의 역사를 서술하는 형태의 도입부는 일상적인 경제학 개설서의 첫머리이기는 하지만, 이런 내용이 현재의 우리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문을 품는 독자라면 지극히 지루한 독서의 시작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에 대하여 사토시는 다음과 같이 서문에서 집필의 범위를 한정짓고 있다.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경제정책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저명한 현대 경제학자들의 인생과 이론을 다루고 있다..... 애덤 스미스나 마르크스 같은 이미 저편으로 사라져 간 경제학자들의 책은 전문적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없는 것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다."



강단의 학자들이 집필한 이전의 개설서들과 비교해볼 때, 이 책의 가장 큰 신선함은 여기에 있다. 경제학 개설서의 출발점에 현대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서있는 것은 인상적이다. 또한, 책 후반부에는 최근 가장 주목받으며, 여러 서적을 쏟아내는 경제학자들인 폴 크루그먼, 로버트 실러,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이나 최근 활발하게 재발견되고 있는 하이먼 민스키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 들어있다. 경제학이 현재 눈앞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학문이기 때문에 경제학 개설서에서도 이런 현재성은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이 다루는 범위 그 자체가 과거의 명작들에 이어 지금 책을 집어들어야 하는 한 가지 이유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본문을 읽어나가다 보면 ‘교수’가 아닌 ‘저널리스트’가 집필하였기 때문에 갖는 장점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자 자신이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책의 목표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흥미 위주의 현대 경제학자 열전’이라고나 할까.....경제학자들의 사생활과 언동이 어떻게 경제이론으로 완성되었는지를 충분히 음미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원론서조차도 펴본 경험이 없는 독자에게 하일브로너의 깊이나 크루그먼의 신랄함은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대로, 이 책은 경제학설의 역사를 다룬 서적치고는 지극히 평이한 수준에서의 이론 언급과 ‘가쉽성’의 경제학자의 사생활 기술이 중심이다. 이런 소개만으로는 경제 서적으로써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참고 문헌을 검토해보면 일본인 특유의 스칼라쉽이 발휘된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인용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재미와 함께 딸려오는 경제학 지식과 몰랐던 명저들에 대한 소개는 덤으로 받는 선물이다.



학문적 서술에서 흑백논리는 화자의 무지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소위 헐리우드의 영웅극들이 그토록 단순한 대립 구도를 반복해서 차용함에도 많은 이들이 매번 열광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이 점에 있어서도 이 책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범위와 깊이가 명확히 갈리고, 좋고 싫음의 차이도 매우 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프리드먼의 ‘승리’도 재검토되어야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라는 저자의 말은 책의 서술 방향이 어떠할지를 대체로 짐작하게 해준다. 프리드먼에 대한 서술과 케인즈에 대한 서술을 비교해보면 저자가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지는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진영논리 수준의 노골적인 서술이 주된 내용이라면 그 책을 누구에게나 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부담감이 아닌, 입가에 웃음을 띄며 읽을 수 있는 유려한 비판과 변호가 있다.



일본 저널리스트의 경제학 개설서가 선배 학자들의 대작을 제칠 수 있는 책이냐는 물음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 책은 새로운 경제학 개설서로써, 새로운 장점들을 갖춘 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앞서의 명 개설서들을 읽은 사람이 또 이 책을 집어들어 읽어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망설임이 있을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나는 여러 친구들에게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라는 책을 재미있는 소설책을 권하듯 편안하게 권할 것이다. 명작 역사개설서인 ‘서양문명의 역사’의 구판 번역본 역자 서문에는 “재미와 수준을 동시에 갖춘”이라는 찬사가 있었다. 십수년간 좋은 책에 대한 더 좋은 수식으로 기억해왔던 이 표현을 이 책에 다시 사용하는 것이 그리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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