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에티엔 바랄 지음, 송지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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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하면 일단 둔해 보이는 비대한 몸에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의 사회부적응자..변태적인 취향같은 부정적인것부터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타쿠'라는 단어가 긍정적으로 쓰인 것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좋지 못하단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타쿠'라는 것에 대해 알아보기로 마음 먹던 중 발견 한 책이 엔티엔 바랄의 <오타쿠 - 가상 세계의 아이들>이다.  

사실 이 책은 '오타쿠'에 대한 책이라기보단, '오타쿠'를 통해서 본 일본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책이라고 보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오타쿠의 발생에 대해 몇 몇 문제있는 개인의 일로 치부한 것이 아니라 고도경제성장과 극심한 경쟁 그리고 새로운 모델의 부재 등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본 사회에 그 책임이 있다고 시작한 것은 좋았으나 뒤로 갈수록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 사례로 소개되는 것들이 처음 시작과는 달리 유별난 사례들을 흥미 위주로 뽑아놓아서 더 그런것 같다. (사실 그들을 오타쿠로 취급해줘야할지 의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이 단순히 이지메를 당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는 너무 비약적이고, 마지막에 옴진리교와 오타쿠의 연결은 솔직히 억지스럽다. 외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오타쿠의 세계라는 시도만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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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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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될 수 있으면, 띠지의 광고는 안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책을 읽기 전부터 뭔가 선입견 같은게 생겨버리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땐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것이 조금은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곧이어 띠지에 나와있는 '15세 소년과 36세 여인의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문구에 왠지 가벼우면서도 조금은 자극적인 소설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식으로 선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탓에 조금은 찜찜한 기분으로 책장을 펼쳤다.  
 
이야기는 미하엘이 한나를 처음 만난 15살 가을부터 시작된다. 우연한 기회에 한나가 미하엘을 도와주고, 그걸 계기로 둘은 운명처럼 엮인다. 미하엘은 성숙한 한나에게 끌렸고, 둘은 샤워를 하고 책을 읽어주며 섹스를 하는 관계로 발전을 한다. 1부 끝날 때까지 자잘한 둘의 이야기를 계속 읽고 있자니, 자극적인 사랑 이야기..그걸로 끝인걸까? 이 책은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재미가 조금 시들시들해졌었다.  
 

책장이 빨리 넘어가기 시작한 건 1부 마지막 부분에서부터였다.
어느날 갑자기 한나는 미하엘의 앞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둘이 다시 만난 곳은 법정. 한나가 왜 미하엘 앞에서 사라졌는지 왜 법정에 피고인의 신분으로 앉아있어야했는지...그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2부에서 시작된다.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것이 다른 법이기에 어떤 이는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는 것을 어떤 이는 대단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한나가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비밀을 알아차린 미하엘이 왜 나서지 않았는지 그 점 또한 탐탁치 않았다.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p201) 

중간의 잠깐을 제외하면 미하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줄곧 그녀에게 책을 읽어준다. 책을 덮을 때쯤, 그가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어쩌면 조금은 단절된..일방적인 대화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하엘은 자신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 대해 확신 하지 못했으니깐 말이다. 그녀를 이해했던 사람이 있긴 있었던걸까?  

한나의 마지막 선택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감옥에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점점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과거는 독일의 뼈아픈 과거와 연결이 되어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 등장하는 문제-개인을 탓할 것인지 집단을 탓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게 아니라면 미하엘이 문제였던걸까? 그가 자신에 대해 실망했다고 느꼈던걸까?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건지 아직까지 정리가 안되고 있다. 처음엔 가벼운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읽을수록 무거워지는 마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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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帝王)과 재상
리정 지음, 이은희 옮김 / 미래의창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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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권력의 정점이라고 하면 단연 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불리우는 재상이 있었다. 제왕과 재상은 각각 일인자와 이인자의 관계로 그들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사이이다. 그들의 관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서로 손을 잡고 힘을 합쳐 천하를 평정하고 각각 자신들의 자리에 만족하는 경우이다. 어진 재상과 현명한 군주의 결합은 예가 그리 많지가 않다. 주공과 주성왕의 이야기나 위징과 당태종 이야기. 바보같은 유비의 아들 유선과 제갈량의 예는 조금 의외였는데 저자는 자신의 모자람을 알고 제갈량에게 모든 일을 맡긴 유선이 그리 멍청한 인물은 아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둘째, 왕이 신하를 위협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예는 주로 개국공신과 왕 사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에선 개국공신들의 힘이 필요하나 막상 천하가 안정이 되면 그들의 출중한 능력이 오히려 왕에게 위협이 된다. 한고조 유방이나 명태조 주원장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로 그들은 개국공신 대부분을 토사구팽해버렸다. 물론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고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아서 목숨을 건졌던 재상들도 있다. 월왕 구천의 재상인 범려와 유방 밑에서 목숨을 부지한 소하가 그랬다.  

셋째, 신하가 왕을 위협하는 경우다. 신하의 권력이 커지면 자연스레 왕을 업신여기게 되고 심한 경우는 제위를 빼앗기도 한다. 이럴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는 것은 치명적이다. 인내심 없는 자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망치니깐 말이다. 당장의 업신여김을 참아냄으로써 후에 권신들을 응징했던 강희제나 송고종의 이야기를 보면 참는것이 무능을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위의 방식은 내가 임의로 나눈 것이고 책에선 친절하게 처세술별로 이야기를 나눠놓았다. 어떻게 하여 권력을 얻고 잃었으며 어떻게 하여 목숨을 잃거나 지켰는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사람 사는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으니 참고가 될만한 이야기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맞춤법이 제법 많이 틀렸다는 것과 내용상 잘못된 점이 몇 가지 있었다는 것이다.(내용상 잘못된 것은 내가 아는 수준에서만 지적하겠다.) 책에선 주공이 주문왕의 아들이자 주무왕의 아들이며 주성왕의 삼촌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주공은 주무왕의 동생이지 아들이 아니다. 그리고 위명제 조예가 조조의 아들이라고 표기가 되어있던데 조예는 조비의 아들이니(조비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걸 따르겠다.) 조조의 손자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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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찰스다윈 자서전
찰스 다윈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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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다윈에 대해서 배운건, 시험용 줄긋기 문제의 보기 중 하나 정도의 수준이었다.
'진화론-다윈' 이 사실만 알면 시험문제 푸는데 지장이 없었고 선생님도 딱 이 수준으로만 가르쳐줬었다.  

서양에선 제법 높게 평가되는 인물 중 한명이 다윈인데, 우리나라에선 생각보다 별로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강한(?) 편이라..다윈이 저평가됐다는 소리를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그가 어쩌다가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교회를 뒤집어 놓는 진화론이란 걸 생각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마침 탄생 200주년이라고 다윈 관련 책들이 쏟아져나왔고 전문적인 건 읽을 자신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보려고 자서전을 선택했다.  

독일의 한 편집자가 편지를 보내와서 내 정신과 성격 발달에 대해 자서전을 쓰는 기분으로 가볍게 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일이 내 아이들이나 손자 · 손녀들에게도 유익한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제안에 흥미를 느꼈다. 할아버지가 자기 정신에 대해 쓴 짧은 글이라도 읽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흥분되겠는가. 또 그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어떻게 일했는지도 말이다. (p17) 

그래도 과학자가 쓴 책인데 조금은 딱딱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다행히 가벼운 마음으로 쓴 글이라서 그런지 술렁술렁 잘 넘어갔다. 

부유한 의사집안에서 태어난 다윈은 어릴 때부터 자연사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수집을 하고 관찰하는 걸 즐겼다. 그의 아버지와 형이 그랬던것처럼 처음엔 의과대학에 들어가지만 의대는 그와는 맞지 않았다. 그런 그가 마취제없던 시절..수술실에서 마취없이 수술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본 뒤에 더더욱 꺼리게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후에 정통파들의 공격을 얼마나 심하게 받았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한때 성직자가 될 생각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p56) 

의대를 포기하고 눈을 돌린게 성직자였다니...그의 말처럼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연사 연구를 취미생활로 하는 성직자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그에게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찾아온다. 22살 때, 피츠로이 선장의 초대로 비글호에 탑승하게 된 것이다. 비글호의 임무는 파타고나, 칠레, 페루 연안 등지의 해상지도 작성이었는데, 다윈은 5년간 비글호에서 지질학 탐사를 하면서 동식물 관찰 결과에 대한 수십권의 노트와 수많은 표본들을 수집해서 온다. 그리고 관찰한 결과를 정리하면서 하나의 이론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게 잘 알려진 <종의 기원>이다.  

적어도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죽는 날은 관찰과 실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날이 될 것이다. (p165) 

스스로에 대해 판단해볼 때 나는 다른 사람이 앞서 간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나는 점점 자유롭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사랑받는 가설일지라도(나 스스로 다루는 주제마다 적어도 하나씩은 만들고야 말았지만) 그와 반대되는 사실이 나타나기만 하면 포기하기 위해서였다. (p170)

단순히 운이 좋아 비글호에 탔고 어쩌다보니 <종의 기원> 을 쓴 건 아니었다. 

다윈에게 실험과 관찰은 삶의 전부였다. 책 절반 조금 못 되는 분량으로 비글호 항해기 중 세인트 야고 섬과 갈라파고스 제도의 탐사일지가 수록되어있는데, 그 글을 읽어보면 다윈이 얼마나 세심하게 관찰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한 세심한 관찰들이 쌓이고 쌓여 <종의 기원>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 중 하나는 자신의 견해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주장을 언제든 철회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건 대단한거라고 생각한다. 다윈은 잘못된 것은 언제든지 고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큰 파장을 몰고 올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오랜 시간 차근차근 준비해왔던 것이다. 그의 이런점들은 본 받을만 하다. 

개인적으로 뒷편에 있는 비글호 항해기 수록 부분이 더 마음에 들었다. 
가볍게 읽기는 좋으나 분량이 적다보니 상세한 이야기는 없다. 다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을 찾아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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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페이크 32 - 최후의 심판, 완결
후지히코 호소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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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위작 논란도 그렇고, 미술계만큼 진짜 가짜 논란이 심한 곳도 없을 것이다. 진짜와 가짜라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진짜라면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고 가짜라면 종이값도 건지기 힘들어서가 아닌가 싶다. 어느 tv프로에서 미술품이 재테크 수단으로 소개된 적도 있고...어느 순간 미술품의 가치는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에서 '얼마짜리인가'로 바뀐 듯 하다. 억! 소리 나는 미술품에 나같은 사람은 왠지 더 멀어지는 기분이다. 소위 있는 사람들의 과시용 장신구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여기 예술을 돈으로만 환산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후지타 레이지.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박사 소리를 들었던 뛰어난 복안가이면서 심미안을 가진 인물로, 모종의 사건으로 메트로폴리탄에서 나와 지금은 도쿄에서 갤러리 페이크라는 수상한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겉으로는 복제화를 파는 평범한 화랑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각종 어둠의 경로로 들어온 미술품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아치우고 있어 미술계에서는 돈만 아는 사기꾼으로 악평이 자자하다. 

분명 후지타는 사기꾼이 맞다. 그것도 참으로 희한한 사기꾼. 1권에 보면 모네의 볏짚이 나온다.(원문이 그런가본데, 볏짚보단 밀짚이나 노적가리가 낫지 않을까 싶다.) 예술의 '예'자도 모르면서 단순히 돈이 되니 미술품을 정치헌금으로 받아먹는 국회의원에겐 그에 맞는 복제화를 비싼 가격에 팔아치워버리고, 그의 화랑을 찾아와 진품 볏짚을 보며 '이름도 모르지만, 이 그림쟁이 선생은 분명 농부의 마음을 알 거요' 라고 말하던 경비원 아저씨에겐 복제화라며 진짜 볏짚을 거저 주다시피 하는 가격으로 팔아치우니깐 말이다. 얼마 후 그 국회의원의 부정 스캔들이 tv뉴스를 장식할 때 tv속 국회의원과 집안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대조가 되었다. 

체력 부실에 가끔은 실수도 하고 사기치면서도 뻔뻔한 태도는 정의로운(?) 전형적인 주인공 이미지랑 거리가 좀 있지만, 오히려 이 점이  후지타 레이지라는 인물에 대한 호감도를 올려주는 것 같다. 겉으로 깨끗한 척 하면서 뒤로는 구린 짓을 하는 사람들보단(그런 사람들이 제법 나온다.) 겉으론 구린 인간이란 평가를 받고 있어도 사실은 그 누구보다 깨끗하고 예술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후지타가 백만배는 더 낫다. 

미술계의 각종 비리와 위선에 대한 고발. 그림과 화가에 얽힌 사연 그리고 간단한 미술 상식들이 등장을 한다. 처음엔 그림 위주로 가더니 뒤로 가면 마야 문명이나 바빌론 이야기, 건축물, 보석, 시계나 오래된 장난감, 벽화 등 여러 영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소재를 끌어다 썼다. 우리나라의 청자와 백자도 나온다.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겸사 겸사 간단한 상식들도 얻을 수 있어 괜찮은 만화다.  

이러한 주제의 만화들이 그렇듯 자잘한 에피소드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전체적인 줄거리가 약한 편이다. 후지타와 사라의 러브라인을 좀 살려줬으면 했는데 조금 흐지부지된 경향이 있고, 단순 소재인 줄 알았더니 나름 전체 줄거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모나리자 관련 에피소드가 좀 약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만화는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기 쉽상인데, 소재가 고갈이 된건지 작가가 32권으로 완결을 내버려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언제 이런 만화가 나올것인가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일단 허영만 선생님의 식객 정도만 알고 있는 수준이라...;;)

이 책의 단점이라면 첫째 그림체가 이쁘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명화나 조각들이 등장하니 오히려 이 편이 나으려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가끔은 작가가 발로 그렸나 싶을 정도로 엉망인 그림체도 보인다. 각 편마다 좀 들쑥날쑥한 경향이 있는데...그림체야 내용이 좋으니 넘어갈 수 있다.  

오역이라고 할까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는 게 두번째 단점이다. 듀러(뒤러)나 펠메일의 터번을 두른 소녀(아마도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 소녀)처럼 이쪽으론 문외한인 내가 척-보기에도 이상한데? 하는 느낌이 드는 것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일본어를 그대로 옮긴 모양인데, 이런식으로 전문 분야에 관련된 만화를 번역하게 된다면 한번 정도는 확인 작업을 해줘야하는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번쯤 검색을 해봤다면 이렇게는 안됐을텐데 말이다. 해적판도 아니고 정식한국어판이라면서 성의 없는 번역이 눈에 좀 거슬렸다.

세번째는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고 할까. '일본이 최고~'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소재들이 많다는 것. 작가가 일본인이니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미술이라는 건 어려워보인다. '감상'이라고 하면 보이는대로 느끼면 되는건데, 언젠가부터 작가가 누구인지 그림이 얼마짜린지 평론가는 뭐라고 말했는지...남들이 다 멋진 작품이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니 나도 덩달아 그런가보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던 것 같다. '감상'하는 건 나 자신인데 화가의 명성과 비평가의 권위, 다른 사람들의 평가라는 것에 휘둘려 제대로 된 감상을 못 했던 것이다. 일단은 잘못된 나의 감상 태도에 대해서 반성을 했다. 미술이라고 하면 왠지 거창하고 어려워보여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갤러리 페이크> 덕분에 미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미술에 대한 거리 좁히기 관점에선 괜찮은 만화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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