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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5년 8월
평점 :
최근 1000회를 맞은 SBS의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대한민국의 정의를 묻다’라는 부제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돈의 권력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통용되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을 방영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담아 낸 프로그램을 보면서 과연 우리에게 꿈꿀 수 있는 미래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절망을 느꼈습니다. 기억에 남는 충격적인 말은 교도소에서 부의 권력을 목격한 이들이 돈에 대한 확신만 뼈저리게 배우고 사회로 나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다는 믿음이겠지요. 대를 이어 부의 권력을 누리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행태 등 대기업의 부도덕성은 암암리에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현실은 자본주의고, 자본주의는 돈이 왕이고, 돈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그 어떤 것도 없어.(p.134)
최근 강한 인상을 남긴 프로그램 덕분인지 소설가 조정래의 《허수아비춤(2015.08.05. 해냄)》은 단순한 문학으로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현재에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경제계의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지요. 작가는 소설에 ‘돈의 힘’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등장시킵니다. 그들은 비자금 조성을 위해 ‘문화개척센터’라는 허울 좋은 부서를 만들어 놓고 정치인, 법조인, 정부 관료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돈을 뿌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비리가 신문을 통해 드러났을 때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아니었음이 증명됩니다. ‘돈은 살아있는 신(p.69)'이라는 그들의 믿음은 허상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속담처럼 무의미해 보이는 싸움을 시작한 이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현실에서도 돈을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믿고 따르는 무리들과 반대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대기업의 비리와 횡포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존재하니까요. 언젠가는 재벌기업이 스스로 분배, 사회 환원 등을 논하는 시대가 올 것이란 기대도 품어봅니다. 그러나 돈의 권력을 이미 경험한 이가 더 높은 권력을 향해 이동해 간 소설의 결말은 우리 사회에 깃든 암울한 현실을 대변해 주는 듯 느껴져 답답했습니다.
허수아비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새 또는 짐승을 막기 위하여 막대기와 짚으로 만들어 논밭에 세우는 사람 모양의 물건이란 의미와 주관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의미입니다. 작가는 돈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빗대어 허수아비라고 지칭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p.5)’는 작가의 심정이 온전히 다가와 마음이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