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 2시, 수연이 받아야 할 전화를 우연찮게 경훈이 받습니다. 처음, 경훈은 수연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 벌인 장난전화로 오해하지만 스스로를 ‘제리’라고 밝힌 발신자가 자신과의 통화 직후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상한 기운을 감지합니다. 수연과 함께 제리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면서 그가 평범하지 않은 삶을 꾸려온 인물이란 사실과 그가 남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조합해 보았을 때 심상치 않은 사연이 있음을 직감합니다. 김진명의 소설 《1026 (2010.03.01. 새움)》은 수연과 경훈이 ‘제리’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로 결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변호사인 경훈은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제리, 즉 제럴드 현(한국이름, 현강일)의 과거 이력을 쫓던 중 그가 평생 조울증으로 고생해왔다는 병력을 알게 되고 조울증이 처음 발병했던 시점에 주목합니다.

    

 

79년 10월 18일에 입원하여 10월 27일에 퇴원. 제럴드 현은 바로 10‧26을 사이에 두고 입원했다가 퇴원한 것이다. p.89

    

 

처음 경훈이 쫓는 대상은 제럴드 현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타인에게 알리려고 한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럴드 현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가 간직해왔던 진실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됩니다. 아니, 수연과 경훈이 마주한 역사적 진실은 무겁다 혹은 중요하다는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1026》은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사건을 파헤친 소설입니다. 실제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살해한 배경에 대해 여러 설이 난무하지만 소설에서는 미국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케네디가 살해당한 이유로 동서 화해를, 박정희가 살해당한 이유로는 자주국방을 꼽았다(p.169)’고 언급하였고 나아가 ‘지금 알려져 있는 10‧26의 진상이란 너무도 허술하고 유치했다. 그러다 보니 죽은 김재규만 모든 몰상식과 모순을 한 몸에 덮어쓰고 희대의 얼간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p.330)’라는 문장으로 이 소설의 핵심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박정희의 사망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일어난 정치적 희생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이 숫자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현대사에 무지한 탓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시점부터는 이 소설의 내용이 허구인지 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0‧26 사건,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율곡사업, 박정희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의 정상회담 등의 자료를 확인한 후에도 혼란은 커지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군 복무, 남로당 활동, 새마을 운동 전개, 유신정권 출범 등 대통령 박정희의 실제 행보는 배제한 채 박정희의 사망을 정치적인 문제로 보기 시작할 때는 박정희라는 인물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는 소설 《1026》을 진실에 가까운 허구라고 지칭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허구와 역사적 진실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독자가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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