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1 - 게와 아이들과 황소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 성격유형검사인 MBTI 를 한 적이 있다. 성격유형검사를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MBTI 검사를 통해서 나는 ‘옳다, 그르다’ 보다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행동이나 사건을 판단할 때 대부분 좋다·나쁘다·기쁘다·슬프다 등의 감각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1월 9일부터 20일까지 1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읽은 책이 있다. 나는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독서 습관을 갖고 있기에 한 권의 책에 일주일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건 다반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10일이 넘는 시간을 할애한 이유는 읽을 책이 여러 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읽는 시간이 힘겨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단지 허구일 뿐이라고 되뇌어 보았지만 허사였다. 소설 《이중섭 1,2(2013.11.05. 다산책방)》으로 다시 태어난 천재 화가 이중섭은 생전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감정 이입되는 작품이다. 예술혼과 가족애 사이에서 주춤거리는 이중섭, 조선의 그림(민족혼)을 그리는 화가와 일본인 아내를 둔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흔들렸던 이중섭의 모습이 애잔하고 애달팠다. 최문희의 소설 《이중섭》은 감정적으로 읽기 힘든 작품이다.

    

 

우리에게 ‘황소’그림으로 유명한 천재 화가 이중섭이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소설 《이중섭》은 2012년 11월, 남덕(야마모토 마사코) 여사가 이중섭 화가의 유품인 팔레트를 기증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은 때부터 시작한다. 이중섭이 사랑한 남덕 그리고 마사코(남덕)가 사랑한 아고리 상(이중섭)의 시선이 교차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일본강점기를 지나 6.25를 거쳐 이념과 사상이 충돌한 혼란의 시간을 버텨낸 인간 이중섭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보여준다.

    

 

그녀가 그에게서 가장 높게 얻고 싶었던 것은 그의 순연한 영혼이었고 그다음이 그가 지닌 예술성이었다. P.257(1권)

    

 

마사코는 프랑스로 그림 유학을 떠나려던 꿈과 미래를 접고 이중섭 아내로의 삶을 선택하지만 이중섭은 마사코 앞에서 주춤거린다. 지배국과 피지배국, 수탈자와 피해자라는 관계의 고리가 이중섭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나보다.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기에 남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차이를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손이 헤프고 마음이 헤프고 쓰임새가 헤픈(P.242,1권) 이중섭은 생존 보다 예술이 우선이었고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친구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천재 화가 앞에 놓인 예술로만 밥벌이를 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 안타깝고 타인에게 독하지 못한 여린 감성을 지닌 남자의 아내로 살아야했던 남덕 여사의 현실이 애처롭다.

    

 

헤헤거리는 그의 헤픈 웃음(P.232,1권) 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낮춤의 의미(P.233,1권) 였다는 사실은 그의 그림 속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은 역동적인 분위기의 ‘소’와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핍박받고 억압받는 민족혼을 소에 담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한없이 너그럽기만 한 ‘소’와 자신 그리고 가족을 위해 타인에게 모질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을 동일시한 결과물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또한 화가로서의 삶 이전에 자신의 그림 속 힘 센 황소처럼 가족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이중섭에게 가장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소설 《이중섭》을 읽는 내내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인 ‘허수’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작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중섭과 마사코의 마지막 만남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배타적 존재로 인지하고 오해만 쌓이게 만든 동기는 모두 ‘허수’로부터 비롯되었기에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운 소식은 허수’가 허구의 캐릭터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진심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