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삼바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영화 포스터가 프린트된 책 띠지가 마음에 들었다.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가 시선을 마주하며 활짝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좋았고, 두 사람 사이에 조그마하게 새겨진 “너무 다른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특히 <언터처블:1%의 우정>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란 소개를 확인 후 두 손 들고 항복하고 말았다. 더 이상 영화 개봉 전 원작 소설을 읽을지를 놓고 고민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분증이 없는 그에게는 삶도 없었다(p.270).

 

《웰컴, 삼바 (2015.01.30.열린책들)》는 아버지가 지어주신 ‘삼바 시세’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가 자신을 증명하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라무나 소우’로 불리다가 어느 순간 ‘모디보 디알로’라는 이름을 빼앗고 마지막에는 ‘조나스 빌롬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자신을 상징하는 이름을 감추고 『체류증』을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는 한 사내의 아픈 이야기이다.

 

모르는 사람의 신분증이 아마 사람들이 그에게 강요하는 비참과 궁핍으로부터 그를 더 잘 보호해 줄 테니까(p.283).

 

삼바는 말리 바마코에서 아버지의 허무한 죽음과 맞닥뜨린 뒤 정의롭지 않은 자기 나라를 혐오했고, 다른 나라, 프랑스를 꿈꾸기 시작했다(p.96). 열아홉 살에 태어난 나라를 떠나 목숨을 건 다섯 번의 국경 넘기를 감행한 뒤 프랑스에 도착해서 십 년 오 개월을 견뎌 낸 그는 프랑스에서 삶을 성공할 가능성을 믿었다(p.7). 그러나 기대하고 기다렸던 체류증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고, 벵센 유치소에 감금된다. 그는 곧 프랑스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나’는 불법 체류자 보호 단체(p.64)인 〈시마드〉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다. 국가가 생산한 불법 체류자의 권리를 대신 찾아주는 일을 한다. 법대생인 마뉘를 비롯해서 시마드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는 프랑스로부터 강제 추방당할 운명에 놓인 그들을 구해내기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최선을 다하지만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때가 허다하다. ‘나’는 삼바가 벵센 유치소에 감금되었을 때 만났다. 체류증을 취득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삼바는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되었을 때 가면을 썼고, 그 뒤 체류증을 얻은 대신 삼바라는 이름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공식적으로 채용이 안 되는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프랑스 경제 전체가 돌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쓰기 편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다(p.283).

 

삼바가 자신의 이름으로 프랑스에서 존재하기를 포기하기까지의 과정은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저자가 《웰컴, 삼바》를 통해 프랑스 내에서 존재하는, 아니 존재하길 원하는 불법 체류자들의 현실을 조명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 한다. 《웰컴, 삼바》라는 소설과 영화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 그것이 아닐까. 삼바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버렸듯이, 생존을 위해서 타인의 삶(이름)을 도둑질했을 수많은 삼바가 프랑스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니 그러하다.

 

이 나라에서 그의 삶은 현실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부정적으로만 정의되었다.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다>.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는 백인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것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를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었다(p.284).

 

<언터처블:1%의 우정>을 연출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란 소개에 책을 펼치기 전부터 내 마음은 온통 분홍빛이었다. 제목만 떠올려도 자동으로 뒤따르는 유쾌한 영화의 한 장면 때문이리라. <언터처블:1%의 우정>에서 어울리지 않을 듯 보였던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누는 따스한 이야기가 《웰컴, 삼바》에서도 펼쳐지리라 막연하게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나!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영화 『노예 12년』을 떠올리게 하는 책 표지가 눈에 들어온 건 책읽기를 마치고 난 뒤였고, 프랑스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삼바 시세’가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을 바로, 그의 발이라고 상상하니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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