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글쓰기, 그것의 고통을 ‘오체투지’에 비교하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오체투지란 불가에서 자신은 낮추면서 삼보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행하는 큰절을 말하는데,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글쓰기가 얼마나 큰 고통이 뒤따르는 행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글의 길이를 비교해서 장편과 단편 중 어느 쪽이 더 편하게 글쓰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글의 길이가 짧을수록 글쓴이가 이야기 속에서 전달할 내용을 표현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왜냐하면 글의 길이가 길 때보다 짧을 때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내는 게 더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사견일지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장편보다 단편을 읽을 때 글 안에서 글쓴이의 생각이나 의미를 찾아내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앨리스 먼로가 선정되었을 때 의외였고 그의 글이 읽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이후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어느 책부터 읽게 될까 무척 기대했고 고대했다. 그리고 드디어 읽게 된 책은 《런어웨이(2013.12.31.곰)》다. 이 소설집은 「런어웨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표제작으로 하여 총 8편이 수록되었다. 그동안 앨리스 먼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 그를 소개하고 찬사를 보내는 다양한 문장들로만 만났다면, 이번에는 오롯이 나의 감성으로만 평가할 수 있게 그의 작품으로 만났다는데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가진 여자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가장 매력적인 점은 앨리스 먼로의 ‘묘사’ 능력이다.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 내는 능력, 인물이 바라보는 시선을 표현해 내는 능력이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저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런어웨이》를 읽으면서 분명히 노벨문학상 수상자답다고 느꼈으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그의 글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할지 갈팡질팡했다. 어쩌면 장편보다 단편을 읽기 힘들어하는 나만의 특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단 일회독을 마친 상태에서 《런어웨이》에 수록된 8개의 단편을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책 뒤표지에 프린트되어 있는 문장, “숨 막히게 아름답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라는 감정을 나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