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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추리 - 강철인간 나나세
시로다이라 쿄 지음, 박춘상 옮김 / 디앤씨북스(D&CBooks)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딱히, 장르소설이 어울리는 계절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소름이 돋아 으스스해 지는 기분을 느끼는 추리, 호러 등등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더위 때문에 지치는 한여름 밤이 제격이다. 개인적으로 귀신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허구추리(2013.7.26. 디앤씨미디어)》라는 신선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어쩐지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활기차게 바꿔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실망했다고 해야 할까, 내가 기대한 귀신의 등장도 없고 귀신과 인간 사이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대결뿐인 이 소설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정말 미스터리하다.
소설 《허구추리》의 등장인물들은 인간, 요괴(캇파, 쿠로 등), 그리고 인간과 요괴 사이에 위치하는 인간으로 구분한다. 주인공 이와나가 코토코는 일안일족(一眼一足)이다. 일안일족은 신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자주 거론(p.43)되는데, 이와나가는 열한 살 때 요괴를 돕는 지혜의 신이 되기로 한 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눈을 잃었다. 반면 사쿠라가와 쿠로는 사쿠라가와 가문의 쿠단 고기와 인어 고기를 함께 먹이는 실험(p.139)에 의해 미래를 보는 불사신이 된 인물이다. 그리고 쿠로가 인간과 요괴 중간 즈음에 위치한 인간이란 사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진 뒤 마쿠라자카 시 마쿠라자카 경찰서에서 근무 중인 유미하라 사키가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허구추리》의 이야기는 마쿠라자카 시에서 ‘철골을 쥔 이상한 여자에게 습격당할 뻔했다’는 소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철골을 쥔 이상한 여자’는 악성 루머를 피해 마쿠라자카 시에 숨어 지내다가 호텔 인근 공사 현장에서 철골에 얼굴이 깔려 죽은 아이돌 ‘나나세 카린’과 닮았다는 이유로 강철 인간 나나세로 불리게 된다. 강철 인간 나나세를 없애기 위해 사키가 살고 있는 마쿠라자카 시로 이와나가와 쿠로가 오면서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허구추리》를 읽은 후 내가 기대했던 귀신 이야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잊고 말았다. 나는 상상력이 만들어 낸 실체 없는 귀신 이야기가 등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상상과 기대가 모아져 현실에서 더 힘을 얻고 강력해 져서 급기야 사람을 살해하는 강철 인간 나나세의 모습이 마치 사이버 공간에서 재미삼아 작성된 댓글이 현실 세계에서 비수가 되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현재의 모습과 겹쳐 보여 기분이 으스스했다. 하지만 강철 인간 나나세가 힘을 잃고 스스로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 펼치는 허구 추리야 말로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추리극이 펼쳐지는 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