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리 선생의 장편소설 《파시(2013.5.25. 마로니에북스)》는 1950년도에 시작하여 1953년도에 끝난 한국전쟁 당시 통영과 부산이 배경인 작품이다. 아직 전쟁 중이라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일상적이다. 다만, 간간히 젊은 청년들이 군 입대를 고민하는 모습과 결말에 전쟁에 나갈 장정들을 붙잡으러 다니는 양복 입은 두 남자의 등장으로 소설 속 현재 시점이 전쟁 중이란 사실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소설 속 배경이 동족끼리 총을 겨누고 피를 흘리며 싸우는 전장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는 것 뿐, 통영과 부산을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흡사 전쟁터와 비슷하다. 사람을 속이는 사람, 마음을 속이는 사람 그리고 제 욕심만 채우려 드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지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혼란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전쟁 중이거나 전쟁이 끝난 후거나,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소설 《파시》에는 - 딸 명화를 위해 고향을 등지고 서울댁(처)이 소원하던 부산으로 이사 간 조만섭, 아들 응주와 명화의 결혼을 반대하는 병원 집 박 의사, 집안이 망한 후 가난을 경험하자 방황하는 학주와 학수, 자식이 없어 젊은 수옥을 탐내는 밀수 장사꾼 서영래, 박 의사 아들 응주와 딸 죽희를 결혼시키고 싶어 하는 윤 박사 - 다섯 가족이 등장한다.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중요도가 떨어지는 윤 박사 가족을 제외하더라도 통영에서 시작되어 부산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이해관계는 거미줄처럼 복잡하다. 한반도의 전쟁이란 불안 요소를 제거하여도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그들의 인간관계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삶과 직결되어 사람들을 방황하게 만든다. 게다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관계는 어떤 이를 일본으로 도망가게 만들거나 혹은 쫓기듯이 군대에 가도록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더 불안한 것은 소설 《파시》의 중심인물들의 방황하는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일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 통에 살아남을 궁리를 하는 사람이나, 혼란을 틈타 돈 벌 궁리를 하는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가일까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물음은 스스로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 될 것이기에 그러하다. 인간의 가장 나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확인한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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