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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남성 우울증의 원인과 증상, 치료과정’을 설명하면서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자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기 전 나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한 평가를 적용받는 대상은 언제나 여자의 몫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남자보다 여자가 더 살아가기 힘겨운 사회가 바로 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에서는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란 이분법적 성역할고정관념으로 나뉘어져 있는 한국 사회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대상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강인함과 남자다움을 중시하는 남성주의 문화 때문에 남자는 남자의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남성주의 문화 때문에 고통을 표현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남성주의 문화가 강조되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만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요된 사회적 역할로 스트레스를 받는 남자의 고통은 또 다른 고통으로 여자에게 전달되며 나아가 딸, 아들에게까지 옮겨졌다. 따라서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남자의 고통을 하루 빨리 치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남성중심사회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문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자도 여자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남자도 여자처럼 마음이 병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화적 가치를 바꿔야만 한다. 과연 가능할까?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이란 부제가 달린 《남자의 물건(2012.2.7. 북이십일)》은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P.7)’했다. 김정운 교수는 ‘한국 사회의 문제는 불안한 한국 남자들의 문제(P.7)’라고 보았고 남자들의 불안한 이유를 존재 확인이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존재 확인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제시한다. 여기서 ‘이야기’란 내가 나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 남자가 남자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아마도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지인들과 한바탕 수다를 풀어놓으면 마음이 개운해 질 때의 효과와 같은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에는 성역할고정관념이라느니 남성중심사회라느니 따위의 무거운 말은 없다. 대신 한국 사회에서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가는 남자의 심리를 큰 일 아니라는 투로 가볍게 풀어낸다. 남자들이 처한 현실을 여과 없이 단순하게 보여준다. 여기에는 남자들만이 느끼는 고통, 외로움이 포함된다. 그리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고통(불안)을 ‘남자의 물건’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너무나 단조로워 심심한 남자의 삶도 재미있어 진다고 말한다. 김정운 교수 본인에게 ‘만년필’이 내면의 갈등을 해소하고 정체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물건이듯이, 이어령에게는 책상이, 신영복에게는 벼루가, 조영남에게는 안경이, 박범신에게는 목각 수납통이 그러한 역할을 하였다.
《남자의 물건》에서는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지만 비단 남자들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남자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여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이며, 나아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불안함을 느끼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에게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는 ‘여자의 물건’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물건은 무엇일까, 생각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