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란 부제가 달린 《집단 기억의 파괴(2012.1.27.알마)》는 민족 자체를 말살하기 위해 토템의 성격을 띤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를 고발한 책이다. 저자는 전쟁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건축물이 훼손된 경우가 아니라 민족 말살이라는 고약하고도 잔인한 저의를 품고서 중요한 건축물과 기념물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가 전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집단 기억의 파괴》에서 증명하고자 한다.

 

이 책은 ‘집단학살과 인종청소의 일부로서 건축물이 맞는 숙명을 들여다본 다음 건물을 표적으로 한 테러 활동과 정복 활동, 사람들을 분산시키거나 결집시키기 위해 구조물을 세우거나 철거하는 행위, 과거의 잔해 위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혁명적인 새 질서로 인해 파괴되는 건물들을 차례로 살펴(p.11)’보는 순서로 진행된다.

 

저자는 종교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건축물과 기념물에 가해지는 공격이 사전에 계획되었는지의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음을 시인한다. 건축물의 파손이 전쟁 중 무차별 폭격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종교적 건물을 파괴하고 묘지를 없애고 거리 이름을 바꾸는 등 세르비아에서, 보스니아에서, 그리고 터키, 중국 등 많은 나라에서 무슬림,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행해졌던 파괴적이고 잔혹한 행위가 무엇이 있었는지 파고들어 그 모든 게 문화청소, 인종청소를 위함이었음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테러집단들이 노리는 목표물이 왜 상징적인 건축물에 집중되는지, 상징적인 건축물의 파괴행위는 어떤 치명적인 효과를 낳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과 펜타곤에 가해졌던 항공기 자살 테러인 9.11테러사건을 통해 미국 국민을 비롯하여 전 세계인이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이미 알고 있으므로 충분히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집단 기억의 파괴》를 읽으면서 종교와 종교의 대립뿐 아니라 민족과 민족의 대립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잔혹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인류 전체에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도 확인하였다. 파괴되고 훼손되어 지금은 사라진 모스크, 석불, 성당 등의 세계건축유산을 우리의 후손들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년에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의 80%가 완파되었던 수도 바르샤바의 재건 과정과 재건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 책을 읽을 당시에도 나는 바르사뱌 도시의 건축물 파괴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는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그 잔인함이 온몸으로 느껴져 소름끼친다. 이 모든 행위는 바로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집단 기억의 파괴》는 하루, 이틀 남짓의 시간을 할애하여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여러 역사적 정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백과사전을 여러 번 들춰봐야 한다. 하지만 많은 시간 동안 공들여 읽은 만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 또한 가볍지 않다. 읽어냈다는 뿌듯함도 여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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