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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평점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사후 50년인 작년 말로 끝나면서 그의 작품의 재출간이 봇물을 탈것이라고 예상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헤밍웨이의 작품은 책이 아니라 영화로 먼저 접했고 이후에도 그의 소설을 읽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진지하게, 제대로 읽어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책장에 꽂혀있는 오래된 책이 아닌 새로이 출간된 책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해도 전혀 빈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2012년 올해 내 손에 쥐게 된 헤밍웨이의 첫 번째 작품은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소설책이 아니라 《파리는 날마다 축제(2012.1.20.이숲)》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입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헤밍웨이가 1921년에서 1926년까지 그의 첫 부인과 파리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쓴 글을 엮은 책입니다. 예술가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헤밍웨이가 경험했던 일, 헤밍웨이가 썼던 글, 헤밍웨이가 만났던 사람, 그리고 헤밍웨이가 지나쳤던 파리의 거리와 카페 등 파리에서 보냈던 헤밍웨이의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추억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위대한 게츠비>로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인연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책장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흑백사진에 담긴 파리의 모습은 헤밍웨이가 걸었던 그 시절의 파리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듭니다. 헤밍웨이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긴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제나 배고팠지만 파리에서 행복했던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파리에 다녀온 적이 없는 나로선, 게다가 앞으로 언제 파리로의 떠남에 허락될지 알 수 없는 나로선, 헤밍웨이가 그토록 사랑했던 파리로 꼭 떠나야할 것만 같은 수상쩍은 흔들림에 마음이 싱숭생숭 거렸습니다.
지금까지는 헤밍웨이를 떠올리면 그의 위대한 작품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라는 사실보다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끝내 엽총으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생각나 마음이 무거워졌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만난 헤밍웨이는 가난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청년으로 여러 사람들과의 교류도 많았던 활동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생의 마지막이 비극적이었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춰 그를 생각하면 편치 않았던 마음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하루를 마치면서 내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기대와 흥분에 마냥 행복했을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가 눈 앞에서 아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