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원하는 책이든 아니면 반강제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든 간에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우선 그 책만이 갖고 있는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오래 전 ‘가쿠타 미츠요’의 소설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2007)』를 읽은 후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는 책의 존재 의미에 대해 고민한 결과다. 읽는 이가 처한 상황이나 장소, 시간 등등 여러 조건에 따라 책은 추억이나 사랑 혹은 인연 등 다른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며, 사람들마다 다르게 저장된 기억에 의존해서 책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것 또한 독자의 몫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2014년도를 시작하면서 마음에 쏙 드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아니, 마음에 든다는 표현은 약하다. 새해를 시작하는 1월에 이 책을 읽게 된 건 변화를 꿈꾸는 내 인생의 운명이라고 느낄 정도니 말이다. 처음에는 사서들과 도서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였다는 저자의 이력에 관심이 갔다. 이른바 책 전문가로 통하는 사서, 도서관 활동가들이 감탄했을 정도면 초보자인 내게는 얼마나 많은 깨우침을 줄지 상상하며 읽기 시작하였으니 처음부터 마음을 빼앗겼음을 인정해야겠다. 게다가 기대보다 그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으니 내게는 성장 욕구를 충족시켜 준 책이란 의미로 남게 되었다.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이란 부제가 달린 《책의 정신(2013.12.6. 알마)》은 크게 다섯 개의 이야기로 나뉜다.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세상을 바꾼 좋은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위대한 고전 목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p.20)’ 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 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에서는 포르노소설, 연애소설이 보편적 인권을 발견하고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는데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 포르노그래피가 외설적이고 음란하며 위험한 영역으로 개념 지어진 이유는 지배층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서는 프랑스혁명과 같은 생각의 대혁신을 이루고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시작은 근대의 과학혁명이 일어난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꾼 혁명적인 책인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를 읽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고도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혁명적인 책(특히 과학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또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남긴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의 진실을 철저하게 파헤친다.

 

《책의 정신》에서 가장 기대한 내용은 「세 번째 이야기,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이다. 저자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저작물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인문학적 독법으로 비판과 의심을 제안하는데 지금껏 책에 담긴 의미나 글쓴이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찾은 뒤 이해하고 수용하려고만 했던 나의 독서 방법을 수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보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가 궁금해졌고, 소크라테스보다는 페리클레스나 솔론에 대해 그리고 공자보다는 묵자에 대해 알고 싶어진 쪽으로 나의 고전에 대한 관심을 리모델링하였다. 그리고 「네 번째 이야기,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와 「다섯 번째 이야기,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에서도 진지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 책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신세계처럼 펼쳐진다.

 

《책의 정신》은 문장 하나라도 놓칠 새라 신중하게 집중해서 꼭꼭 씹으면서 읽었다. 읽는 내내 나의 성장과 발전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글쓴이를 질투할 때가 간혹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니, 질투라는 감정이 끼어들 사이도 없었다는 게 옳겠다. 책의 역사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저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으니 말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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