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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이란 감정은 참으로 오묘하다. 인간이 스스로 지켜야할 것은 명예 혹은 재산을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최우선은 생명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도 있듯이 명예나 재산을 모두 잃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랑은 종종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 빛을 향해 나는 습성 때문에 불 속으로 들어가는 불나방처럼 앞으로 자신의 인생은 어찌될지 예상하지 못하고 위험 속으로 돌진한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이 지독한 사랑에 빠진 남자를 여기서 만날 수 있다.
심리스릴러 소설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2011.8.8. 해냄)》의 처음은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집으로 와야 할 약혼녀가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는 어느 남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약 8개월 후 라디오 스튜디오를 점령한 한 남자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자신이 정한 구호를 외치지 않을 경우 인질을 한 명씩 죽이는 ‘캐시 콜 게임’을 시작한다. 첫째 딸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이라는 이날 아침 스스로 죽기로 결심하지만 갑자기 터진 사건 현장으로 억지로 끌려오게 된다. 인질의 목숨을 위협하는 범인이 협상 전문가로 이라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사람을 찾아달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인질범의 요구는 처음에 묵살 당한다. 단순히 정신이상자의 이상행동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라는 얀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약혼녀 레오니의 사망에 뭔가 수상쩍은 낌새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게다가 둘째 딸 키티가 얀이 점령한 스튜디오 안에 있음을 알게 된 이라는 더더욱 레오니의 생존이 절실해진다.
인질범과 인질들, 인질범과 협상 전문가의 관계 등 인질극을 벌이는 사건 현장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문장은 섬세하면서도 치밀하다. 겉으로 보기에 이 소설은 사랑하는 약혼녀 레오니를 찾으려는 한 남자의 절규와 첫째 딸 사라의 자살을 막지 못한 죄책감으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이라가 위험에 빠진 둘째 딸 키티를 구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두 개의 이야기는 벗겨도 벗겨야 할 껍질이 계속 나오는 양파처럼 하나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분화를 거듭하다가 급기야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난다. 사건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는 무척 매력적이다.
장르소설은 여름에 읽어야 제 맛이다. 나는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추리소설과 스릴러소설을 읽으며 무더위를 견뎠다. 그리고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읽기 시작한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는 약간 남아있던 더위를 싹 사라지게 만든 작품이다. 독일소설이라고 해서 딱딱한 문체의 글과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흥미로운 스토리에 감탄만 나온다. 올 여름에 읽어야 할 장르소설로 추천한다. 더위가 물러가기 전에 꼭 읽어보시길.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