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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윤휴’는 누구인가? 이덕일의 신간 《윤휴와 침묵의 제국(2011.7.12. 다산초당)》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로 이 질문이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윤휴가 죽은 후 조선은 침묵과 위선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고, 그런 침묵과 위선은 그의 사후 3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p6)고 말한다.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것도 거절당한 윤휴는 사약을 마시기 직전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 있는가(p9)”라고 했다는데,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나와 다른 너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 그리고 실제 그렇게 죽여 왔던 시대, 그런 증오의 시대의 유산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p9)고 말하면서 금기가 되었던 인물, 윤휴를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윤휴는 누구인가’와 더불어 ‘윤휴의 죄목은 무엇인가’였다. 사약을 받고 게다가 후손조차도 입 밖으로 윤휴라는 조상의 이름을 언급하기 꺼려했을 때는 역모나 이에 견줄만한 큰 죄를 지은 게 분명할 터. 하지만 혹시라도 놓친 게 있을까봐 눈을 비비며 샅샅이 훑어봐도 역모나 그에 버금하는 죄목을 찾을 수 없었다. 저자가 처음 언급하였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가 낳은 비극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단지 시대를 잘못 만난 탓으로 돌리기에는 억울한 점이 너무 많다. 비단 윤휴뿐만이 아니다. 조선의 허망한 마지막을 떠올릴 때면 안타까움을 넘어서 화가 날 정도니 말이다.
윤휴는 독학으로 독창적인 학설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자 절대추종론자’였던 송시열과 부딪히면서 윤휴는 사문난적으로 몰린다. 이후 예송논쟁을 시작으로 북벌을 위해 개혁을 시도한 윤휴는 당대 최대의 당쟁가 송시열과 끊임없이 대립한다. 말로는 북벌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북벌은 꿈도 꾸지 못한 송시열의 양반 사대부 중심의 정치적 색깔이 북벌을 위해 사대부의 기득권을 타파하려고 한 윤휴의 색깔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에서 윤휴가 죽어야 했던 실제 죄는 두 가지로 꼽는다. 하나는 실제로 북벌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반 사대부들도 평민들처럼 똑같은 의무를 지는 대개혁을 실시하려던 것(p410)이었다. 즉, 북벌은 말로만 추진하면서 사대부의 특권은 계속 유지해야만 했던 서인 정권의 시대의 금기였던 것이다.
최근 김종서와 수양대군이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시기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간담이 서늘해진 순간이 있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에게 ‘나와 뜻을 같이하지 않아서 자식이 위험에 빠졌다’고 말하였고, 문종 사후 좌의정에 제수된 김종서가 수양대군의 정치 입성을 막아서자 ‘직접 내 손으로 김종서를 죽이겠다’고 결심하는 두 개의 장면이다. 이덕일의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은 김종서의 죽음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뜻을 함께 하지 않는 상대를 죽였던 과거 시대에 비하면 현재는 정말 다행이라고 안도하게 된다. 적어도 목숨을 빼앗지는 않으니 말이다. 윤휴와 대립했던 송시열을 다룬 이덕일의 또 다른 책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2010.9.)>도 읽고 싶어진다.